이설야 시인
[詩想과 세상]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1935~2024)


신경림 시인은 이제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우리와 함께 같은 별을 바라보던 시인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시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사랑했다. 농부와 광부와 지게꾼과 장꾼과 등짐장수를 사랑했다. 협동조합 구판장과 산골여인숙과 토담집과 막장과 장터와 국밥집을 사랑했다. 곡괭이와 삽과 물동이와 장독대를 사랑했다. 수제비와 틀국수와 봉지쌀과 꽁치 한 마리를 사랑했다. 갈대를 사랑했고, 진눈깨비를 사랑했다.

낙타가 본 것을 사랑한 시인의 눈 속에, 우리들의 슬픈 이야기가 알알이 박혀 있다가 시가 되었다. 우리 삶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언제나 쓰러진 자들의 꿈을 일으켜주던 시인,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을 시로 펼쳐 보여주던 시인은 낙타가 되어 “어리석은 사람”을 등에 업고,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와 “길동무 되어서” 저세상에 가서도 떠돌 것이다. 가장 낮은 별이 되어 우리에게 언제나 속삭일 것이다.


Today`s HOT
성모 마리아 기념의 날, 로마를 방문한 교황 영국에 몰아친 강풍, 피해 입은 지역의 모습 아우다비 그랑프리 우승자, 랜도 노리스 이색적인 '2024 서핑 산타 대회'
성지를 방문해 기도 올리는 무슬림 순례자들 올해 마지막 훈련에 참가하는 영국 왕립 예비역 병사들
모스크바 레드 스퀘어에서 열린 아이스 링크 개장식 시리아의 철권정치 붕괴, 기뻐하는 시리아인들
미국에서 일어난 규모 7.0의 지진 2024 베네수엘라 미인대회 많은 선수가 참가하는 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 훈련 5년 넘게 재건축 끝에 모습을 드러낸 노트르담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