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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모르는 사람이 죽었어요. 모르는 사람…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

2020년 12월 어느 날. 그녀는 ‘모르는 여자’의 영정을 들고 안산의 어느 농장으로 향한다.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온 캄보디아 여자가 살았던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영정 속 여자의 이름은 속헹. 간경화를 앓던 속헹은 12월20일 혹한에도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식도정맥류 파열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곰팡이로 뒤덮여 있던 숙소로 들어서기 전부터 그녀는 흐느껴 운다. 눈물이 그냥 마구 쏟아진다. 그녀는 무섭다. 슬프다. 소름 끼친다. 처음 경험하는 무서움이고 슬픔이다. 밤에 되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소름이 바늘처럼 온몸에 꽂혀 있어서, 찌르고 찔러서 잠들지 못한다.

경기도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차양막이 쳐진 숙소 비닐하우스로 퇴근하고 있다. 이 농장의 작업장 옆에는 대부분 이주노동자 숙소가 있었다. 권도현 기자

경기도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차양막이 쳐진 숙소 비닐하우스로 퇴근하고 있다. 이 농장의 작업장 옆에는 대부분 이주노동자 숙소가 있었다. 권도현 기자

시간이 흘러 2024년 4월, 그녀는 또 ‘모르는 여자(이주노동자)’의 사연을 통역하며 운다. 모르는 여자의 사연이 너무 가슴 아파서 눈물이 흐른다. 그녀는 울고, 울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통역을 계속한다. 캄보디아어 통번역사 킴 렉카나. 지구인의 정류장(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보호와 회복을 돕는 비영리단체)에서 상담 겸 통역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모르는 여자(속헹)’가 사망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또 들려온 모르는 여자 혹은 모르는 남자의 죽음, 모르는 사람의 ‘병에 걸림’, 모르는 사람의 ‘임금 체불’, 모르는 사람이 당한 ‘성추행’ ‘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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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웃어요, 나는 잘 울어요.”

통번역사로 상담을 맡은 그녀는, 결혼이민자로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ㄱ ㄴ ㄷ…’밖에 몰랐다. 그때는 잘 울지 않았다. 두 아이를 출산하면서도 열심히 한국어를 익힌 덕분에 통역 일을 하다 잘 우는 사람이 됐다. 자신의 고향 사람 사연이어서, 그래서 더 슬프고 가슴이 아파서 우는 게 아니다.

“캄보디아 사람, 한국 사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인 게 중요해요.”

그녀는 한국 사람의 힘든 사연을 들어도 눈물이 난다. 아픈 아기, 외롭게 사는 할머니들을 보면 울컥한다.

사람인 게 중요한 그녀에게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래도 대답을 해야 한다면 무지개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캄보디아 노동자들도 그래서 그녀에게 모르는 존재이다. 언어는 통하지만 다들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 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그 말을 한국어로 통역해 한국인들에게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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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데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녀는 그것이 ‘감정’이라고 말한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같은 고향 사람이지만, 말이 안 통하는 경우도 있다. “같이 지내려면 말(대화)도 중요하지만, 감정을 주고받는 것도 중요해요.” 그녀는 ‘그냥 언니처럼, 동생처럼’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준다. 곁에 머물러준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했다. 농장주들의 항의 전화도 많이 받고 욕도 다반사로 들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어울려 지내며 재미있는 순간들이 오고, 기쁨이 왔다. 방(당장 머물 곳 없는 캄보디아 노동자들 머무는 쉼터)에 숨어 있듯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려는 친구들(이주노동자들)이 있다. 그럼 그녀는 방문을 두드리고 말한다. “같이 밥 먹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들과 가족이 돼 같이 음식을 만들고, 같이 그 음식을 먹는다.

그녀는 ‘캄보디아 농업노동자 119’ 상담원이기도 하다. “새벽 4시, 5시에도 제게 전화해요. 불안해서요. 무서워서요. 그런데 한국에서 전화할 데가 또 없으니까, 들어줄 사람이 또 없으니까.” 그녀는 새벽에 불쑥 걸려오는 전화 받기를, 곁에 머물기를, 듣기를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한국에 몇년 있어도 한국말을 잘 못한다. 배울 시간이 없어서다.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 쉬는 게 보통이고, 그보다 더 일하는 경우도 많아 한국어를 배울 시간이 없어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그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녀는 필요한 곳에 있어주려 한다.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 노동자에겐 보호자가 돼 수술동의서에 사인도 하고, 수술 전과 후 내내 보호자로 있어줬다.

그녀가 한국어 중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해요”다. 캄보디아어 중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감사해요)”다. 말하는 동안에도 듣기를 계속하는 그녀의 입에서 두 말이 합쳐진다. “사랑해요, .”

▼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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