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은 게으른, 아니 게을러 보이는 들쥐다. 다른 들쥐 가족들이 겨울을 대비해서 식량을 모으느라 바쁘게 일할 때 프레드릭은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햇볕을 쬐거나 초록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꾸벅꾸벅 졸기나 한다. 왜 일을 하지 않냐는 식구들의 타박에 겨울을 위해서 햇볕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고 답하는 프레드릭.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을 텐데 싶다. 그러나 한겨울 동굴에서 갇혀 지내며 저축한 식량을 다 축내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모두가 지치고 우울해졌을 때, 프레드릭의 진가가 드디어 발휘된다. 프레드릭은 봄에서 가을까지 모은 햇볕을 나눠주고 색깔을 보여주며 이야기와 시를 들려주어 다른 들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준다. 칼데콧 아너상을 받은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은 바로 시인을 자임하는 이 들쥐의 이야기다.
아이가 어렸을 때,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상 받은 책이라니 뭐가 좋아도 좋겠거니 하고 잡은 이 책을 읽어주다 가슴이 찡해졌다. 프레드릭이 상징하는 것이 예술이요, 인문학일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팍팍한 삶을 위로할 것이라는 직관적이면서도 명료한 메시지가 단정한 그림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아이는 심드렁한데, 나 혼자 괜히 감동받아 읽고 또 읽곤 했다. 너희의 쓸모가 무엇이냐는 무례하면서도 공격적인 질문에 시달리거나 숫자로 결과를 표시하며 의의가 있느니 없느니를 따지는 경박함에 약간은 질린 상태로, 혹은 지친 상태로 지내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현실에도 ‘프레드릭’은 곳곳에 존재한다. 코로나19 시국에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집에 갇혀 지내야 할 때, 베란다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각자의 연주와 노래를 온라인으로 합하여 업로드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적이 뚝 끊긴 회색의 대도시는 얼마나 섬뜩한지. 그러나 썰렁해진 회색의 대도시 곳곳을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화가들이 색색의 그림으로 장식해주곤 했다. 시인들은 두려움과 고립감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문구를 올려주었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녹음해 공유하는 이들도 있었다. 안드레아 보첼리가 두오모 성당에서 부르는 노래를 생중계로 보던 기억도 생생하다. 걷잡을 수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 시신을 처리하지 못해 냉동 트럭에 보관한다는 도시들의 이야기가 뉴스로 들려오던 시절이다.
얼마 전 읽은 <전쟁과 목욕탕>이라는 책에서는 과거 오키나와에도 ‘프레드릭’이 있었음을 이야기해주었다. 1945년 미군에게 점령당한 후 포로 수용소에 수용된 오키나와 사람들은 입고 있는 옷 한 벌로 열악한 수용소 생활을 버텨야 했다. 제대로 조리해 먹을 도구나 열원이 없어 버려진 집을 부숴서 땔감을 마련하고, 버려진 밭에서 젊은이들이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을 캐어오면 모두가 나눠 먹으며 지냈다. 그렇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생활 속에서도 깜깜한 밤이 되어 정적이 깔리면 어디서랄 것도 없이 샤미센(일본의 전통 현악기) 연주와 노랫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런 생활에 제대로 된 샤미센이 있었을 리가. 그것은 누군가 빈 깡통과 낙하산 끈으로 얼기설기 만든 샤미센이었고, 당연히 그 소리는 변변치 않았다. 그러나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훌륭한 음악이었다고, 그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가 회고했다.
엄밀히는 ‘전쟁 잠시 멈춤’ 상태이건만, 우리는 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단군 이래 유례없이’ 풍요롭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그럴 뿐, 삶은 퍽퍽하기만 하다.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출생률은 전쟁 중인 국가보다도 못하다. 감자와 고구마를 나눠 먹지 않고 서로에게 쓸모가 무엇이냐고 윽박지르며, 햇볕도, 색깔도, 이야기도 ‘산업’으로만 다루는 사회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 이 한겨울 동굴 같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프레드릭’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