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블랙홀을 만든다”

정원식 기자
[금요일의 문장]“경제발전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블랙홀을 만든다”
경제발전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규율에 따라 일하는 위계 조직들 속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적인’ 헌법, 선거제도, 언론의 자유, 인권 보장을 갖춘 사회라 할지라도 경제발전은 일상 한가운데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블랙홀을 만든다. - <래디컬 데모크라시>(한티재)

자국의 정치 체제가 반민주적이라고 자인하는 정권은 거의 없다. 일본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미국 사회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래디컬 데모크라시>에서 ‘민주주의’가 아무 뜻도 전달하지 못할 정도로 남용되고 있다면서 ‘정명(正名)’을 시도한다. 한국이나 중남미 일부 국가의 사례를 들어 경제발전이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것처럼 보는 견해가 있다. ‘민중이 권력을 갖는다’는 민주주의 본래의 정의를 파고드는 러미스는 이 같은 관점을 단호히 거부한다. “경제발전은 몇 가지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다. 민중들이 자유로운 상태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종류의 노동, 노동조건, 노동량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경제발전은 반민주적이다.”

책은 1996년 영어판이 나온 지 28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됐다. 공역자인 이승렬 전 영남대 영문과 교수는 10여년 전 ‘녹색평론’ 창간인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로부터 번역을 요청받았으나 당시에는 지적 준비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래디컬 데모크라시>에서 2020년 작고한 김 전 교수의 목소리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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