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대통령실의 방침을 두고 “이 문제를 당장 논의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때아닌 종부세 개편론 제기 이후 여권까지 폐지 카드로 논의에 비집고 들어오자 ‘속도조절’을 강조한 것이다. 향후 세법개정안을 통해 종부세 개편의 공식 논의가 시작되면 민주당의 고심은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기자단과의 오찬에서 최근의 종부세 논의와 관련해 “현재 원구성이 현안이므로 종부세 개편을 논의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앞서 이해식 대변인도 전날 “(종부세 폐지는) 총선 민의에 나타난 국민들의 바람과 다르다”라며 현재는 이 사안을 다룰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 원내대표는 다만 종부세에 대한 장기적인 논의는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민주연구원과 당 정책위원회, 원내대표단으로 이어지는 다층적인 체계에서 종부세 개편 방향에 대한 장기적인 논의를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그는 세제개편을 충실히 논의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출신의 안도걸 의원과 국세청 출신 임광현 의원 등을 중심으로 연구모임 출범을 계획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종부세 개편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민주당의 이날 입장은 대통령실의 종부세 폐지론에 대한 대응 성격으로 나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종부세는 중산층 부담 문제가 꽤 있고, 이중과세나 징벌적 과세 요소가 존재한다”며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제안이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 등에 대한 국면전환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종부세와 관련된 논의는 민주당이 먼저 촉발한 것이기에 머쓱한 상황이 됐다. 앞서 박 원내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실거주 1주택자의 종부세 폐지를 주장했으며, 고민정 최고위원은 완전 폐지까지 열어둔 듯한 입장을 내놨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제안을 환영한다”며 당 자체적인 세재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의 이같은 종부세 개편론은 지난 20대 대선 당시 한강벨트 패배의 복기에 따른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이 뛰며 종부세 부담을 안게 된 중산층들이 마음을 돌렸으니, 그 원인을 제거해 표심을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미 지난 대선에서 종부세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일각에선 이 대표의 대선 준비 작업이란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종부세 개편은 조세형평성 논란과 세수 감소, 지방재정 악화 등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어, 민주당의 설익은 제안은 시작부터 우려를 낳았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무주택자인데, 표심을 챙기기 위해 집값이 뛴 이들부터 챙기느냐”는 반론도 나왔다. 중산층과 부유층을 위해 종부세를 완화하면 집값의 추가적인 인상을 가져와 무주택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거론된다.
민주당은 이날 종부세 논의의 속도 조절을 강조했으나, 정부가 다음달 세법개정안에 종부세 개편이나 폐지를 반영하면 대응 방향을 둔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들은 ‘부자 감세’를 비판하는 입장이라, 종부세 개편을 주장하는 이들과 격론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2021년에도 종부세 완화를 당론으로 채택한 뒤 심각한 내홍을 경험한 바 있다.
야권의 또다른 한 축인 조국혁신당은 벌써 민주당의 종부세 개편에 이견을 보이며 차별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혁신당은 최근 “민주당이 자산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윤석열 정부를 막아 세우지는 못할망정, 그에 가세하는 듯해 실망스럽다”며 민주당이 종부세 논의를 재고할 것을 요구했다.
야권과 민주당 내부의 반발을 고려하면 민주당 지도부는 향후 종부세 개편을 추진해도 실거주 1주택자의 과세표준 산정시 공제 금액을 높이는 등 수위를 낮춰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완전 폐지’를 강조하는 여권의 선명성과 비교되기에 종부세 민심을 잡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치적 실리를 챙기려다 자칫 자중지란만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