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어떤 중산층’을 위한 정책인가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그간의 불평등 연구 흐름을 보노라면 한동안 ‘1% 대 99%’처럼 최상층으로의 초집중에 대한 연구가 크게 활기를 띠었다. 피케티의 연구가 이를 선도했다. 그러다가 상위 10% 또는 20%에 집중하는 연구가 나오고 중산층의 내부균열, 세습중산층 또는 특권중산층에 주목하는 연구, 불평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균열선은 1 대 99만이 아니라 중산층 내부에도 존재한다. 이는 학술적으로는 물론 정치적 함의도 크다. 강남좌파, 브라만좌파 논란에서 보듯 불로소득주의, 능력주의라는 것이 보수정치는 물론 중도정치에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주로 1% 슈퍼리치로의 초집중 문제를 다루었지만, 우리가 이전의 고전적 초세습사회가 아니라 넓게 퍼진 프티불로소득자사회를 살고 있다면서 세습자본주의 위험을 경고했다.

크리스토퍼스의 ‘불로소득자본주의 시대’로 오게 되면 이 문제는 훨씬 더 중요하다. 그는 집값 상승과 임대료 인상을 즐기는 부동산 프티불로소득자와 무거운 주거비 및 실질임금 정체로 고통받는 무주택 세입자 간의 계급적 균열을 짚는다. 영국의 진보정치는 프티불로소득자 문제, 심지어 모두 건물주가 되고 싶은 ‘워너비’ 불로소득자 심성과 마주해 어려움에 빠졌다고 토로한다. 영국의 풍경이지만 마치 한국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한국에도 부쩍 중산층 연구가 늘어났다.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균열을 보이며, 새 계급동학을 낳고, 어떤 정책이 요구되나.

조귀동·구해근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조귀동은 노동시장 분단에 집중해 세습중산층 개념을 제시했다. 소득상위 10~15% 정도가 중산층인데 대기업 정규직, 전문직 종사자 가정에서 중산층 지위가 세습된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자본에 기반해 자녀들도 명문대 졸업장과 좋은 일자리를 독식한다. 구해근도 상위 10%에 집중하는데 특권중산층이 출현해 한국사회 계급동학을 주도하고 있다고 본다. 조귀동과 달리 노동시장 지위뿐만 아니라 부동산 소유를 함께 고려한다. 상위 10%는 20%에 비해 근로소득보다 자산 소유에서 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지위세습에 대해 부정적인데 경쟁이 치열해 상위중산층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KDI의 중산층 보고서가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 보고서는 중산층 위기론과 달리 의외로 중산층 비중이 줄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 계층을 판단할 때 순자산을 가장 중요한 요소, 그다음을 소득으로 응답했다. 심리적 비상층에 대한 언급이 가장 흥미롭다. 주관적·객관적 조건을 통합해 상층, 심리적 비상층, 핵심중산층, 취약중산층, 하층 등 5계층을 구분했는데 심리적 비상층은 소득기준으로 상층이지만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엘리트 중산층이다. 이들은 고학력·고소득자 비중이 가장 높고, 관리직·전문직 비중과 자가 비율도 가장 높으며, 자산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 양질의 교육을 받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직업을 갖고 이를 통해 경제적 기반을 이루었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능력주의를 옹호하지만, 생각만큼 ‘특권중산층’으로 불릴 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는 않다. 입시제도 단순화를 지지하며 사회적 측면에서 균형을 제고하는 정책, 사회적 합의 추구, 다원화된 정책에 대해 나름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중산층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하는 문제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심리적 비상층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될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상층과 함께 여러 통로로 정책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주택가격 상승을 통한 자산 축적이 그들의 계급적 입맛에 맞지만, 이는 주거안정을 바라는 취약중산층(및 하층)의 이해와는 충돌한다. 취약중산층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정책적 결론이다.

총선 승리 후 민주당은 이른바 ‘기본사회 정책’의 일환으로 25만원 민생지원금을 추진하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러더니 대뜸 종부세를 손보자고, 개악하자고 불을 붙인다. 이게 정말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는 정당이 할 정책인지, 이때 정책중심에 두고 있는 중산층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기본사회라는 것이 어떤 모양인지도 잘 알 수 없다. 한술 더 떠서 청와대가 종부세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총선 이후 정책 경쟁이 특권중산층을 위한 공조가 될까 심히 우려된다. 보통 중산층과 서민, 약자를 위한 우리의 정치는 어디에 있나. 걱정이 태산이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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