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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를 숨겨야 하는 곳으로”…퀴어축제 뒤 우울감 호소하는 성 소수자들

입력 2024.06.04 15:37

하리보(활동명)가 지난 1일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받아온 퀴어 축제 관련 물품들. 그는 “처음으로 축제에서 받은 물품을 집 거실에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사진 크게보기

하리보(활동명)가 지난 1일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받아온 퀴어 축제 관련 물품들. 그는 “처음으로 축제에서 받은 물품을 집 거실에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축제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늘 가족들이 다 잠든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와야 했어요. ‘거짓말로 이뤄진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탓에, 축제에서의 행복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리보(27·활동명)는 1년에 한 번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끝나면 늘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는 “우울함이 1, 즐거움이 10이라면 평소 5이던 기분이 축제 뒤엔 2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축제 현장에 가득했던 지지와 인정은 현실에는 없었다. 가족에게도 성 정체성을 밝히지 못한 하리보는 퀴어축제에 참여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매번 축제가 끝나고 우울감으로 병원을 찾았다. 부모에게서 독립한 올해 처음으로 그는 우울하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축제에서 받은 물품을 거실에 늘어놓았을 때 그동안 늘 축제 물품을 숨기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축제의 만족감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며 “축제 뒤의 우울감은 다시 나를 숨겨야 할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4일 만난 다른 성 소수자들도 하리보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지난 1일 열린 퀴어축제가 끝나고 우울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울증은 나를 부정하는 곳으로 가야 할 때 생긴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펠릭스(33·활동명)는 지난해 축제 후 일주일 넘게 우울했다고 했다. ‘주말에 무엇을 했냐’는 직장 동료의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 그는 “원래의 나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고립감을 느꼈다”며 “회사에 다니며 매일 스스로 닳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7년을 일해온 직장을 최근 관둔 그는 “새 직장에서는 당당히 성 정체성을 밝혀볼 것”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겪는 조롱과 혐오 또한 이들을 더 낙담케 하는 요소다. 민티(29·활동명)는 2018년 축제가 끝난 거리에서 “여자끼리 사귀나 봐. 더러워”라는 말을 들었다. 민티는 “나는 손을 잡았다고 욕을 듣는데, 헤테로(이성애자)는 길에서 손잡고 가는 게 당연했다”며 “퀴어축제라는 안전한 울타리 밖으로 벗어난 기분이었다”고 했다. 김김(26·활동명)도 “성 소수자를 향한 조롱을 접할 때마다 위축되는 게 사실”이라며 “축제에서조차 나를 검열하게 될 정도로 무기력했다”고 말했다.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으로의 소속감은 성 소수자들이 우울감을 덜어내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펠릭스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에 가입한 후 우울감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행성인에 가입한 후 축제장에서 벗어나더라도 나와 연결된 사람이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하리보가 퀴어축제 후 처음 행사물품을 펼쳐둔 공간 역시 성 소수자 친구들과 함께 사는 집이었다.

축제 뒤 찾아올 우울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앞으로도 축제로 향하겠다고 말했다. 예예(16·활동명)는 퀴어축제에 대해 “내 정체성을 인정하는 이들, 그들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라고 했다. 하리보는 “30대가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라며 “이번 축제에서 어린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앞으로의 축제에서 그들에게 나이가 들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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