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위기설은 과도한 우려였을까 [공실수렁]
황보창 한국기업평가 위원 인터뷰
“증권사 PF익스포저 58%가 부실 위험
당국·금융기관 위험 인식 현실과 차이”
건설사 줄도산을 의미한 ‘4월 위기설’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2의 태영건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쏙 들어갔다. 현재 시장에서는 과도한 우려 없이, 당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정책에 따른 후속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PF 위기는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란 믿음이 확산된 분위기다.
‘모두가 아는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황보창 한국기업평가 평가정책본부 전문위원은 이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장과 당국이 현재 PF부실과 위기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본다.
황보 위원은 2000년대 초 대형건설사 산하 하도급업체 평가를 시작으로, PF사업장의 시행·시공·재무 위험도 등을 따지는 구조화금융 평가, PF 대출을 내준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평가 등 20여 년에 걸쳐 PF를 다각도에서 들여다봤다. 1~2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정부 관료들은 물론 민간에서도 그처럼 오랜 시간 건설업과 금융업 전반을 아우른 PF전문가는 찾기 힘들다. 그는 ‘투자 황금기’가 본격 시작한 2019년 이미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자산가격에 거품이 껴있고, 금융기관이 리스크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황보 위원을 지난달 30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PF사업장 규모, 갑자기 100조 늘린 금융위
‘전체 사업장 10%만 부실 위험’ 믿을 수 있나
금융위원회는 지난 달 국내 PF사업장 규모를 230조원(2023년 말 기준)으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까지 135조원이라던 전체 PF규모가 100조원 가량 불어난 것이다. 당시 금융위 관계자는 “(바뀐) 사업성평가 PF사업장 대상을 230조원이라고 말한 건 선의의 정책 의지이자 더 포괄적으로 대책을 꾸리겠다는 취지”라고 했는데, 이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당국이 PF사업장 규모나 부실을 제대로 인식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230조원이란 숫자는 한기평이 자체 집계한 수치와 비교적 일치한다. 사업장 규모에 대한 당국의 인식이 현실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올라온 것인데, 부실 위험에 대한 인식은 아직 실제와 차이가 있어 보인다.”
-금융위는 부실이 우려되는 사업장이 전체 5~1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지나친 낙관일까.
“한기평은 22조원 규모 증권사의 구조화금융 PF 표본을 전수조사해 부실 여부를 판독했다. 조사가 50% 가량 진행된 현 시점에서 증권사 전체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의 58.4%가 ‘요주의 이하’로 추정됐다. 사업성 문제로 만기가 연장돼 부실 위험이 생긴 채권이 절반 이상이란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PF의 질이 좋다고 분류되는 증권사의 부실위험이 이 정도면, 당국의 위기 인식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PF는 대부분 시공사가 ‘책임준공’ 약정을 맺는다. 시공사 쪽에서 부실을 일부 흡수하면 증권사가 실제로 떠안을 리스크는 낮아질 수 있지 않나.
“A급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통해 일부 부실을 떠안는데도 부실위험 PF채권 비중은 여전히 32.9%에 달한다. 자체 조사를 통해 대형 건설사 6곳이 전체 증권사 PF익스포저의 60%를 책임준공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금융기관 입장에선 ‘A급 회사가 책준으로 들어와 있는 만큼 안전하지 않나’라고 볼 수 있지만, 집중도 측면에서 대단히 문제가 있는 숫자다. 결국 이 소수 회사 중 한 곳이라도 채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리스크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이후 민간 어디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는다.”
국내 시행사는 통상 자기자본 10%만 가지고 PF사업을 벌인다. 여기서 시공사와 신탁사의 보증이 붙는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AA급 건설사들이 신용보강을 제공한 미착공 사업장 가운데 93.7%는 현대건설에서, A급 건설사들이 책임준공을 한 사업장의 61.0%는 롯데건설에서 신용보강을 했다. 전체 증권사 PF익스포저의 60%를 책임준공한 6개 시공사 리스트는 조만간 발표될 한기평 보고서에 담길 예정이다.
“저금리 지속 않는 한 수요 회복 되지 않아
PF 사업장 지원은 연착륙 아닌 부실 이연”
과거 저축은행 사태 때는 일부 업권에 한정됐던 PF 익스포저가 현재는 은행, 증권사뿐 아니라 캐피탈, 신탁사 등 금융업 전반으로 확대됐다. 황보 위원은 광범위한 리스크 관리 실패를 초래한 원인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장기간 지속됐던 저금리, 규제 완화, 잘못된 리스크 판단 지표, 그리고 탐욕이다.
-탐욕을 리스크 확산 원인으로 꼽은 게 인상적이다. 실제 탐욕이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했다는 것인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증권사 IB 파트 성과급이 탐욕을 부추겼다. 지출에 대한 내부 승인이 나오면 곧바로 성과급이 책정되는 구조라, 설령 현장이 망가지더라도 그건 성과급이 나가고 한참 뒤에 발생한다. 어떤 증권사는 리스크 심사팀도 사업을 통과시키면 성과급을 줄 만큼 모든 투자가 통과되는 분위기였다. 이 탐욕은 PF채권 회수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잘못된 지표가 시장에서 쓰이면서 리스크 관리가 안 됐다.”
-건설업과 금융업 전반에선 현재 PF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한다. 바로 금리다. 금리를 내리면 공사도 원할해지고 수요도 뛴다고 본다.
“금리 인하는 업자들이 부실 사업장의 연체 이자를 내고 버티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물건이 팔려야 위기가 해결되는데 금리가 낮아지는 것만으로 수요는 회복되지 않는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이론으로 정립했듯 금리와 부동산 자산 간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금리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며 상관관계가 발생하는 구간이 있긴 한데, 그건 저금리가 상당기간 지속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성립된다.”
-수도권의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집값은 우상향’이란 인식도 팽배한데.
“거래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 특히 투자수요가 결정한다. 그간은 투자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가정 때문에 신축이 구축 가격을 밀어올렸지만 이제는 반대로 구축이 신축을 끌어내릴 수 있다. 분양가를 낮춰 순환을 빨리 일으켜야 할 때다.”
-시장 수요가 회복되는 가격이란 어느 정도를 말하나.
“아파트 분양가 기준으로 2021~2022년 고점과 비교해 20~25% 떨어지면 시장에 온기가 돌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치솟은 공사비는 원가이기 때문에 내릴 수 없고, 결국 시행사가 100원을 주고 산 토지가격이 서울을 제외하고 30~40원까지 내려가야 거래가 일어나는 분양가를 맞출 수 있다. 이 말은 처음 자금을 조달한 시행사 뿐만 아니라 선순위 채권자도 어느정도 손해를 봐야한다는 의미다.”
황보 위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경·공매 활성화 정책은 부실 사업장을 이처럼 빠른 속도로 정리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정부가 PF 사업장 평가 기준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규제 완화책도 내놨기 때문이다. 신규자금이 추가 공급된 사업장에 대해 사업성 평가기준을 완화시켜준 게 대표적이다. 황보 위원은 “사업성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용적률, 설계 등을 조금 고쳐놓고 등급을 높여 부실을 이연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당국이 추후 일일이 잡아내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PF사업장을 경·공매에 전적으로 맡기면 자산가격이 필요 이상 곤두박질치고, 정상사업장까지도 망가지는 ‘투매’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시장은 바보가 아니다. 미분양 사태가 발생한 둔촌주공은 일반 분양가 10억원(59㎡)으로 한 달간 미분양이 났는데, 당시 10분 거리의 강동헤리티지자이는 같은 평수가 6억~7억원 선으로 조기 완판했다. 3억원 차이로 완판됐다는 건 시장이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지길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지금처럼 금융기관이 만기를 연장하고 정부의 온갖 지원이 들어가면 부실의 이연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혹자는 그걸 ‘연착륙’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걸 부실 이연이라고 말한다. 부실 이연의 결론은 일본식 장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