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먹자상가의 쓸쓸함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페이스북에 꼬박꼬박 점심 먹은 걸 올리는 친구가 있다. 서울 강북 도심의 한 빌딩에서 일하는 그는 매일 메뉴를 바꿔가며 먹는다. 더러는 전날 음주 상태에 따라 새로운 해장거리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덕분에 서울 도심에 ‘이런 집이 있어?’ 할 정도로 깜짝 놀랄 만한 식당을 발견하곤 한다. 5000~6000원에 백반 한 상 차리고 찌개 올리고 돈가스도 주는 집 같은. 같이 식당을 하는 처지에서 당최 그 값에 어떻게 저런 음식을 차려내는지 놀랍다. 사실 원가에 밝은 내가 보면 짐작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이른바 자기 착취다. 주인이 자기 이익을 상당 부분 녹여내어 반납하는 거다. 이런 식당에서 한 상 잘 받아먹은 손님은 뭔가 미안해져서 인사라도 해야 한다는 책무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라 종내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 “도대체 이 값이 가능한 겁니까.” “아휴, 그냥 하는 거죠, 남는 게 없어요. 뭐. 허허.”

비교적 땅값이 싼 서울 변두리에서는 한 상에 5000~6000원 하는 밥집이 더러 없는 것도 아닌데 월세 비싸기로 소문난 도심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이게 뭔가 싶다. 다동, 무교동, 장교동, 을지로, 종로 같은 데서 종종 이런 밥집을 발견한다. 한때 이 일대는 월급쟁이들이 너무도 많아 입에 밥을 제때 넣으려면 ‘오픈런’을 해야 했던 곳이다. 못된 주인은 손님 더 받으려고 좀 더디 먹는다 싶은 테이블을 가리키며 대기손님들에게 “여기 식사 다 하셨어요. 이리 오세요!” 하기도 해 분노를 치밀게 했다. 권리금이 몇억원이며, 장사가 잘돼 주인이 근처에 빌딩 올렸네 어쩌네 하는 식당의 신화가 있던 지역에서 시중 절반 값에 ‘반찬도 막 퍼주는’ 식당이 있다는 거다.

싼 식당이 있다는데 너는 뭐가 불만이냐 하겠지만 이게 그다지 흐뭇하지만은 않다. 싸게 팔아도 상가에 윤기도 없고 손님이 바글거리지 않는 건 이상하다. 그렇다. 도심 공동화의 예고다. 그런 식당이 입주한 건물에 가보면, 듬성듬성 이빨이 빠져 있다. 수십개 먹자식당이 빼곡하던 지하상가에 구멍이 나 있다. ‘임대’ 표시가 세입자를 기다리지만, 미구에 사라질 운명을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막 퍼줘도 손님은 별로 없고, 그나마 있던 가게들도 하나둘 접고 떠난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세상인데 도심이라고 그 운명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이 없다. 인구 소멸은 곧 노동 인구의 소멸, 도심의 소멸을 의미한다.

서울 사무용 건물은 대체로 10% 이상 비어 있다고 뉴스에 나온다. 비어 있는 게 들킬까 봐 밤에 괜히 불 환히 켜놓은 건물도 부지기수다. 노동자 1인당 사무실 점유율도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좁은 사무실에 수많은 직원이 복작거리던 풍경은 옛말이다. 그러니 이른바 먹자상가에 손님이 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간편식을 파는 편의점이 점심에 북적이고 찌개백반 대신 샐러드바 찾는 변화된 입맛을 가진 세대가 오피스의 주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이면 온갖 음식 냄새가 우주처럼 가득 차던 도심 지하식당가의 기억은 이제 쓸쓸하게 퇴장하고 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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