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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연장이 행복을 줄 것이란 착각

입력 2024.06.07 08:00

수정 2024.06.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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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죽는가

벤키 라마크리슈난 지음 |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432쪽 | 2만2000원

[책과 삶]수명 연장이 행복을 줄 것이란 착각

인간은 필멸하는 존재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의 사태 앞에서 철학과 예술, 종교가 꽃을 피웠다. 생물학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최근에는 과학이 그 답을 찾고 있다.

<우리는 왜 죽는가>는 200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분자생물학자 벤키 라마크리슈난이 ‘인간은 왜 늙고, 왜 죽는가’라는 오랜 질문에 대해 과학이 발견해낸 사실들을 정리한 책이다.

북극고래는 200년을 살고 그린란드 상어는 400년을 산다. 인간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공중보건 상태의 개선과 의학의 발달 덕분에 인간의 기대수명은 100년 전에 비해 약 두 배쯤 늘었다. 1900년 무렵 미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47세였으나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기대수명은 80.5세다.

기대 수명은 늘었으나 최대 수명은 120세쯤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실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잔 루이즈 칼망(1875~1997)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인으로, 사망 당시 122세였다. 이견은 있다. 2001년 아이다호 대학의 스티븐 오스태드는 유전자 치료 기술의 발달로 2150년이 되면 150세까지 사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최대 수명이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날 수 없는 것은 DNA 때문이다. DNA는 생명의 청사진이자 생명 과정을 관장하는 제어기다.

문제는 DNA가 시간이 지나면서 손상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세포는 날마다 약 10만 번의 DNA 손상을 겪는다. 이 정도 빈도로 손상이 일어나는데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복구 기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이 DNA 손상을 효과적으로 복구하면 노화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지지만, 복구 기전에 문제가 생기면 세포가 노쇠하거나 스스로 파괴된다.

복구 기전의 핵심은 p53이라는 단백질이다. p53은 DNA 손상이 있을 때 그 손상을 복구하는 단백질 유전자를 발현시킨다. 인간은 p53 단백질이 두 개뿐이지만 인간과 달리 암에 거의 걸리지 않는 코끼리는 무려 20개를 갖고 있다.

‘헤이플릭 한계’도 인간 생명이 유한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반드시 등장하는 개념이다. 미국의 해부학자인 레너드 헤이플릭은 1961년 세포가 분열할 수 있는 최대 횟수가 50~60차례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염색체 말단에 존재하는 텔로미어라는 이름의 염기서열 때문이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 중요한 유전정보 대신 사라지면서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하는데, 세포 분열이 반복되면 텔로미어가 닳아버리다가 결국 세포 분열이 멈추는 순간이 온다. 학자들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연장하는 효소인 텔로머라아제를 세포에 주입하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몸의 세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인 아데노신 삼인산(ATP)을 만드는 세포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가 고장나는 것도 노화의 원인이다. 미토콘드리아의 주기능은 당 분자를 산화해 연소시키는 것인데, 이 때 산소가 물 분자로 완전히 환원되지 못하면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될 수 있다. 저자는 “미토콘드리아 손상은 세포가 안에서부터 녹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자들은 노화를 되돌리고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는 2006년 성체 세포를 줄기세포 같은 상태로 만들 수 있는 4가지 유전자를 발견했다. 그러나 ‘야마나카 인자’를 사용해 재생한 많은 조직은 종양 발생률이 높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제약업계는 미토콘드리아 손상을 막기 위한 항산화제도 개발해왔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항산화제가 사망률을 낮춘다는 임상적 증거가 없으며 베타-카로틴, 비타민 A, 비타민 E 등 일부 항산화제는 오히려 사망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완전한 기술을 사용해 불멸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과학자 로버트 에틴거는 1976년 디트로이트 인근에 인체냉동보존술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원자를 모았다. 이곳에는 2만8000달러를 내고 자신의 몸을 냉동보존하겠다고 동의한 지원자 100여명의 신체가 보관돼 있다. 2011년 92세로 사망한 에틴거 박사 자신도 그 중 한 명이다.

신체 냉동보존은 괴짜 과학자만의 발상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페이팔 공동 창립자 피터 틸,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시점인 ‘특이점’ 개념으로 유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초지능의 위협을 설파해온 철학자 닉 보스트롬 등도 냉동보존을 지지한다.

뇌를 별도로 보관해두었다가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면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 로봇에 내려받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2016년 설립한 기업 뉴럴링크를 통해 로봇에 뇌를 다운로드하는 기술을 개발 중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이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 공동설립자 샘 알트만도 인간의 마음을 디지털화해 클라우드에 업로드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저자는 이 같은 시도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인체냉동보존술이 성공을 거두리라고 믿을 만한 증거는 티끌만큼도” 없고 “뉴런 하나하나가 컴퓨터 회로의 트랜지스터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가여울 정도로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앞서 언급한 머스크와 틸을 비롯해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항노화 연구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죽음을 미루거나 피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려는 사람이 많다. 캘리포니아의 첨단 기술 갑부들은 특히 그렇다”면서 “(이들은) 노화 역시 생명의 암호를 해킹해 해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학적 문제라고 믿어버린다. 일확천금을 경험했기에 참을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주류 학계의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항노화산업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활용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노화와 수명 연장을 연구하는 생명공학 기업이 700개가 넘고 이들의 시가 총액을 합치면 300억달러(약 41조원)가 넘는다.

저자는 설령 기술적 장벽을 넘어서는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수명 연장이 과연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인지 묻는다. 인간이 100세를 넘겨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기대수명이 120세에 근접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불평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부유층이 더 오래 살고 더 오래 일하면서 더 큰 부를 대물림하면서 결국 인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으로 양분될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수명 연장이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과학적 업적이나 예술적 성취는 노쇠한 두뇌가 아니라 젊은 두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이 지혜가 늘어나면 인지 저하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혜란 모호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라면서 “특정 연령이 지나도 계속 지혜가 축적된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생물학의 발전이 입증해주는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단순하다고 말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거대한 노화 과학 산업계가 죽음의 문제를 풀기까지 우리는 삶의 모든 아름다움을 최대한 누릴 수 있다. 그러다 떠날 때가 된다면 그 영원한 만찬에 참석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기꺼이 일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책과 삶]수명 연장이 행복을 줄 것이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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