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들인 동작구 가이드라인
사당동 일대 맞춤형 개발 방식 제안했지만
단독-다세대·연립 갈등 ‘도화선’
지난달 31일 오후 3시 서울 노량진동 동작구청 정문 앞에는 주민 30여명이 모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유재산 빼앗아가는 재개발 결사반대’ ‘모아타운 떼준다는 3번 약속 구청장은 지켜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한 참가자는 “가이드라인 준수하라” “구청장은 약속을 지켜라”는 구호를 쉼 없이 외쳤다. 경찰 10여명이 친 폴리스라인에는 ‘사당 15구역 신통기획 재개발 절대 반대 - 아파트 짓는 동안 내 전·월세 수입 누가 내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가이드라인은 뭐고 구청장은 무슨 약속을 했던 걸까. 시간은 1년5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작구는 지난해 1월30일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도시개발·관리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박일하 구청장이 도시 정비사업 기간을 평균 13년에서 3년 이내로 단축시키겠다며 내건 ‘동작구형 정비사업’ 공약의 일환이었다. 지역주택조합 등 추진 주체만 3곳인 신대방삼거리역 북측 지역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동작구는 7개월 후에는 ‘사당·남성 도시개발·관리 가이드라인’도 만들어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노후화한 저층주거지로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침수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사당 1·4동의 종합적 정비방안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용역비만 5억원이 들었다.
가이드라인은 사당로16길을 기준으로 남측인 1권역(사당·이수)과 북측인 2권역(남성)의 구역별 개발안을 제시했다. 1권역 중 C1~4 구역은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재개발 또는 모아타운(소규모 주택 정비사업)으로, D1~8은 모아타운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모아타운은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곳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이다.
박일하 구청장은 “구에서 수립한 도시개발·관리 가이드라인으로 정비사업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체계적인 도시개발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사당1동 재개발은 속도를 내는 듯했다. 한 달도 안 된 지난해 9월27일 동작구청은 추진주체인 (가칭)사당 15구역 신통기획 재개발 준비위원회(준비위)가 제출한 사당동 419-1 일대 재개발 구역계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준비위는 지난 3월 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 신청 조건 30%를 크게 웃도는 59.2%의 동의서를 받아 동작구청에 신청서를 냈다.
문제는 준비위 구역계와 동작구 가이드라인이 다르다는 점이다. 구역계에는 C1, C2뿐 아니라 D1, D2도 포함됐다. 30년 미만 주택이 많아 노후도가 25%에 그쳐 가이드라인이 정비대상지에서 제외한 곳도 추가됐다. 재개발을 위한 노후도 기준은 60%다.
현재 사당 15구역 재개발 반대 추진위원회(반추위) 대부분은 C1과 C2의 단독주택(다가구 포함) 소유주이다. D1과 D2 등에는 공동주택(다세대·연립)이 많다.
반추위에 따르면 C1과 C2 구역의 단독주택은 448가구(37.3%), 공동주택은 752가구(62.7%)다. 준비위 구역계의 단독주택은 75가구가 추가된 523가구(29.5%), 공동주택은 495가구가 더해진 1247가구(70.5%)이다.
공동주택이 많아져 조합원이 늘면 일반분양율이 떨어져서 조합원 분담률도 높아지게 된다. 반추위는 가구당 추가 분담금이 1억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면서 동작구 가이드라인대로 C1과 C2 구역만을 대상으로 재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추위 소속 정경태씨(77)는 “구청이 스스로 밝힌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주민과 협의도 없이 준비위가 신청한 구역계를 (사실상) 확정했다”면서 “사업성이 낮아질뿐 아니라 서울시가 지난해 5월 신통기획 후보지 수시 모집 안내문에서 지양하라고 한 부정형·돌출형이어서 도시개발 정책과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반대 주민들은 박일하 구청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한다. 지난 3월과 4월 세 차례에 걸쳐 D1 구역 등을 제외하거나 재개발 추진 구역을 재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동작구는 ‘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일뿐’이라면서도 다음 단계인 후보지 추천은 보류한 상태이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관련 법령상 추진위가 제안한 구역계를 구청이 임의로 제척할 수 없고 가이드라인 주민설명회 때도 신청 주민이 사업방식을 변경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설명했다”면서 “요건을 갖춘 만큼 해당 지역을 서울시에 후보지로 추천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반대 민원이 있는 만큼 준비위에 최대한 협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구청장이) 반대 주민들에게 D1 구역 등을 제외하겠다고 했고 검토하라는 지시도 했지만 구청이 직권으로 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보고했다”면서 “추진 주체가 주민과 합의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준비위는 구역계 변경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준비위 소속 김흥수씨(60)는 “구청과 협의해 구역계를 정해 고시하고 징구서까지 받았는데 일부 주민 반대가 있다고 신청 지역을 바꿀 수 없다”면서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또 10년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자체가 재개발 주민 편의를 높이겠다며 수억원을 들여 만든 가이드라인이 되레 지역 갈등만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D1과 D2 구역은 실제 사업이 추진된 적이 없는데도 동작구가 ‘예시’로 제시한 후 주민들 사이에서 모아타운 사업지로 정해져 버렸다.
반추위는 추진위 위원 대부분이 모아타운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모아타운 지역은 모아타운으로 개발하라”고 외치고 있다. 반추위 소속 김운현씨(61)는 “동작구가 지자체 최초로 수립했다는 가이드라인을 업무추진 단계에서는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구역으로 지정돼도 빨라야 10년 걸리는 게 재개발인데 시작부터 주민 갈등이 첨예하면 사업이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공공이 갈등 조정이 아니라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고 말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도 “구청이 준비위가 신청한 구역계를 공개하기 전에 주민들끼리 협의하도록 하게 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