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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협치를 원하는가

대한민국 제21대 국회(2020~2024)와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겹친 지난 2년간, 대통령에 의한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14번 있었다. 21대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개정되었어야 할 30여건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위헌 상황을 방치한 셈이다. 지난 5일 개원한 제22대 국회 첫 본회의는 여당과 야당 간 합의 불발로 인해 야당 단독으로 개최되었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미 여당에서 8표만 이탈하면 대통령의 거부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시민 입장에서 이런 정치를 바라보고 있자면 지칠 수밖에 없다. 물론 갈등과 경쟁에는 역동성이 있어서 더 나은 대안과 공익의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정쟁에도 미덕은 있고, 나름 이유도 있다. 단독 개원한 이번 국회도 야당은 국회법을 준수하자는, 여당은 법사위와 운영위를 제2당에 배분한 관습을 준수하자는 나름의 입장 간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결과이다. 그러나 각자 부분적으로만 맞을 뿐, 큰 그림에서는 결국 시민들의 삶과 정책의 시의성은 한쪽에 밀어두고 하위 차원의 쟁점들이 주도하는 정국을 통해 우리는 ‘협치’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늘 등장하는 정치적 언어인 협치는 협력해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나라 헌법이 권력분립과 민주공화정을 기본으로 하는 한 다양한 시민들과 정치세력들 간 협치는 지극히 당연하다. 그럼에도 마치 협치가 고뇌 끝에 결심한 예외적 결단이라도 되는 양 선언된다. 제도가 요구하고 있는 협치를 정치적 리더 개인의 덕성 문제인 양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 제도조차 충분히 협치를 조장하고 있지 못하다.

사실 이상적인 협치가 보기 드문 것은 놀랍지 않다. 협치, 넓게 보아 협력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첫째, 협력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협력을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태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확증 편향적 심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바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이때 내 신념과 다른 말을 하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은 마음속에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같다. 확증 편향에 빠진 정치인과 그 집단에 협치란 심리적 수준에서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협력은 시간을 요구한다. 입장이 다른 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조율하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 공적 의사결정에서 시간은 귀한 자원이라는 점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협치는 상당히 비싼 정치인 셈이다. 셋째, 협력은 용기를 요구한다. 사회 문제에 직면한 시민들은 이렇게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에 인내심을 가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더욱이 협력의 결과물을 확신할 수도 없다. 따라서 협치를 선택하는 데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협치가 이렇듯 비싼 정치라면 협치를 선택하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그만큼 값싼 정치일 것이다. 그런 값싼 정치를 통해 만들어진 공공정책은 잠깐의 입법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넘어서는 장기적 안정성을 확신하기 어렵고 시민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래서 협치를 말하는 것이다.

협치는 전적인 승리를 추구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적 태도를 요구한다. 승자독식 기반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에 익숙한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승리는 곧 삶이요, 패배는 곧 몰락이었다. 승자독식 제도와 정치적 양극화가 결합하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겨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협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커진다. 게다가 협치란 본질적으로 경쟁하는 정치집단 간 협력이기 때문에 리더는 추종자들로부터의 압력에도 민감해진다. 이런 정치 제도와 문화에는 협치가 설 자리가 거의 없다.

협치는 근본적으로 공존을 선택하는 일이다. 협치는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몫을 인지하고, 그가 늘 나의 정치적 공간에 머물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이제 각 지역구 수준에서 약간의 득표율 차이가 국회 수준에서 거대한 의석수의 차이를 야기하는 현상은 정치적 공존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유익하지 않다. 다수이든 소수이든 상대방의 의도를 무력화시킬 정치공학적 계산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공존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

협치는 비용을 치르더라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정치에서 진정 협치를 원하는 리더들이, 협치를 어렵게 만드는 승자독식 제도를 개혁할 의사가 우리 정치공동체 안에 없을 리 없다. 새로 출범한 22대 국회는 장기적 협치의 기반을 새로 조성해 나가야만 한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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