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3년 제15차 전원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오늘 우리가 안건 상정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일 질문하자 인권위 사무처 직원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11차 전원위원회가 열린지 3시간 지난 시점이었다. 결국 이날 회의는 준비된 의결 안건 3건을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폐회했다.
파행의 불씨는 군인권보호관인 김용원 상임위원이 당겼다. ‘고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관계자에 대한 부당한 수사 및 징계’ 진정 사건의 조사결과 보고서가 공개된 경위를 문제 삼으면서다.
지난달 군인권센터는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한 인권위 조사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인권위 사무처가 작성한 보고서로서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대령에 대한 수사외압·인권침해를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군인권보호위원회(군인권소위)는 지난 1월 이 보고서 내용을 묵살하고 관련 진정을 기각했다. 군인권보호관인 김 상임위원과 한석훈 위원이 기각 의견을 냈고, 원민경 위원은 인용 의견을 냈지만 기권으로 처리됐다. 군인권센터는 “날치기로 기각됐다”며 김 상임위원을 공수처에 수사 의뢰했다.
인권위 조사결과 보고서 공개는 불법? ···사무처 “적법 절차 따랐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채 상병 사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 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김 상임위원은 비공개가 원칙인 군인권보호위 회의결과 및 회의록이 조사결과 보고서에 편철돼 공개된 것은 ‘불법’이라며 반발해왔다. 진정인이 요구한 것은 ‘조사결과 보고서 일체’인데, 의결 내용이 담긴 회의록까지 포함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3일 전원위에서 “위원이 어떤 의견 제시했는지가 공개되고, 인민재판에 넘겨졌다”며 “소신대로 발언할 수 없고 눈치나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 사무처는 절차에 따라 공개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냈다. 박진 인권위 사무총장은 10일 전원위에서 “행정법무담당관실은 청구 내용 초안을 마련하고, 군인권조사과 의견회람을 거쳐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이 문제 삼은 ‘회의결과 및 회의록’에 대해선 “전체 심의 내용이 아닌 진정사건 결정요지 기록”이라며 “위원 의사를 물어 한석훈 위원의 의견서는 비공개하는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공개했다”고 했다. 이어 “회의 결과를 편철하는 건 조사결과 보고서와 최종 의견이 다를 경우 왕왕 있는 일”이라며 “위법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의 수사와 관련해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의는 공전했다. 김 상임위원은 앞으로 정보공개 여부를 사무처가 아닌 위원회와 소위원회 위원장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훈 대령 관련 보고서는 군인권보호위 소관인 만큼 군인권보호관인 자신이 공개 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인권위 사무처는 1년에 900건 이상 쏟아지는 정보공개청구를 각 소위로 나눠 공개 여부 결정하는 것은 절차상으로도, 행정 효율 측면에서도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각 부서를 편재하고 소관부서마다 업무사항을 정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날 전원위에서도 고성과 막말, 위원 간 비방이 오갔다. 앞선 회차에서 상정됐으나 의결되지 못했던 3개 안건은 이날 회의에서도 상정되지 못하고 다음 회기로 밀렸다. 송 위원장은 “다음 기일에 안건 6개가 대기하는 걸로 안다”며 “적어도 오늘 안건 하나를 처리하고, 다음에는 그 안건을 논의할 수 있길 바랐다”고 했다.
위원들도 피로감을 토로했다. 김용직 위원은 “안건도 아닌 것을 가지고 3시간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심의를 위해 출석한) 비상임위원들에게도 결례되는 일”이라고 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