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사 권익위원회’

정제혁 논설위원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원회 정부합동민원센터 앞에서 대통령 부부 명품 수수 면죄부 준 국민권익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원회 정부합동민원센터 앞에서 대통령 부부 명품 수수 면죄부 준 국민권익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국가 반부패 총괄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2008년 2월29일 출범했다. 그전까지 흩어져 있던 국가청렴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를 통합했다. 캐치프레이즈는 “청렴하고 공정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힘이 되는 권익위”이다. 반부패가 권익위의 정체성이자 존재 이유인 셈이다.

권익위의 존재감이 각인된 건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 재임기다. 대법관을 지낸 김 전 위원장은 2011년 6월 국무회의에서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을 처음 제안했다. 이어 권익위는 2012년 8월 공직자가 금품 등을 100만원 넘게 받으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청탁금지법)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은 우여곡절 끝에 2015년 3월3일 국회를 통과해 2016년 9월28일 시행됐다. 제안자인 김 전 위원장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으로 불렸다.

권익위가 지난 10일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공직자 배우자는 제재 규정이 없다’ ‘(대통령의) 직무 관련성 여부를 논의했으나 종결했다’고 했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서면으로 신고하고 반환토록 조치해야 한다. 디올백 수수 사건의 핵심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이다. 그러나 권익위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김 여사에게 디올백 등을 건넨 최재영 목사와 김 여사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김 여사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을 포함한 ‘전직 미국 연방의원협회’가 방한한 다음날인 2022년 7월10일 최 목사가 메신저로 “대통령 내외분이 함께 접견”을 하면 좋겠다고 하자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하겠다”고 했다. 디올백 수수의 대통령 직무 관련성은 물론 대가성까지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그런데도 권익위는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했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사건 처리 시한(90일)을 훌쩍 넘겨 116일간 질질 끌더니 김 여사가 윤 대통령 따라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 나선 날 군사작전을 하듯 서둘러 꽃길을 깔아준 것이다. 국민권익위가 아니라 ‘여사권익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부패도, 독립성도 포기한 권익위의 굴신이 낯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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