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임성근 탄원서’와 ‘채상병 어머니 편지’

정제혁 논설위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달 14일 오전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22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고 취재진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달 14일 오전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22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고 취재진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19일 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채모 상병 어머니가 12일 해병대를 통해 편지를 배포했다. 편지는 절절하고 단호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이 세상 어디엔가 숨을 쉬고 있는 것만 같아 미친 사람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아들 잃은 슬픔은 책임 규명 요구로 이어진다. “유속이 빠른 흙탕물 속에 들어가라는 지시로 아들이 희생됐다. 그 진실이 밝혀져야 제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아들 사망사고를 조사하시다 고통을 받고 계신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님의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시고 과감하게 선처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국방부 장관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부하 장교들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지난 10일 경북경찰청에 보냈다. 탄원서는 졸렬하고 비겁하다. 임 전 사단장은 포11대대장이 작전 대상 지역을 자의적으로 확대한 것, 포7대대장이 무리하게 수중 수색을 지시한 것을 채 상병 순직 원인으로 꼽았다. 임 전 사단장은 해병대 수사단이 삿된 공명심에 눈이 멀어 무리한 수중 수색을 지시한 걸로 지목한 인물이다. 그에 반해 모든 게 부하 장교들 탓이라는 임 전 사단장의 탄원서는 부하들을 위한 탄원서가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한 탄원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임 전 사단장은 군 작전의 특수성을 감안해 부하들을 선처해 달라면서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고 했다. 채 상병 어머니는 편지에서 “남원과 서울 신사동에 있는 산부인과를 왕복 8시간 다니며 어렵게 가진”, “휴가 한 번 나오지 못하고 수료식 때 부대 근처 펜션에서 점심식사 했던 것이 마지막 날이 되어버린”, “아토피가 있어 수영도 못하고 해병대 훈련받을 때 몇번 강습받은 게 전부인” 아들을 말했다. 이렇게 피와 살과 일상의 표정을 가진 아들, 딸들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

군인 목숨을 국가의 소모품 취급하는 임 전 사단장 말과 아들을 그리는 채 상병 어머니 말은 아득히 떨어져 있다.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격노와 ‘해병대원의 억울한 죽음과 억울한 항명죄를 규명하라’는 상식적 요구의 거리가 그러하듯.


Today`s HOT
계속되는 남동부 지역 산불, 대응에 보강 필요.. 눈보라와 많은 비를 뚫고 지나가는 사람들 계속되는 달러와 연료 부족, 거리로 나선 목장주와 사업가들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다저스 팀의 야구 훈련
사이클론 알프레드로 인한 해안 침식 모습 저먼윙스 비행기 추락 10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5주 만에 퇴원한 교황, 최소 2달은 안정 취해야.. 근처 주거 건물까지 번진 쇼핑 센터에서의 화재..
연이은 가자지구 공습, 보이지 않는 전쟁의 끝 올해 초 산불 여파 가시기 전, 또 다시 산불 발생 계속되는 러시아 공습에 뉴욕에서 집회가 열리다. 오랜 시간 산사태가 발생하는 랜초 팔로스 베르데스 반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