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상급종합병원(빅5)이 한꺼번에 집단 휴진에 들어간다. 서울대병원이 오는 17일부터 무기한 집단 휴진을 예고한 뒤 연세의료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도 18일 대한의사협회 집단 휴진에 동참키로 했다. 연세의료원은 27일부터 서울대병원처럼 무기한 집단 휴진에 돌입하기로 했다. 빅5 의료진이 동시에 집단 휴진하는 건 과거 의료계 ‘총파업’ 때도 전례 없는 일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환자들도 강경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의사집단을 더는 용서해선 안 된다”며 의사 고소·고발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환자와 가족들은 진료·수술이 밀리는 각종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우리 선생님마저 떠날까 봐 너무 무섭다”며 분노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제자 털끝 하나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사들의 행동에 이제는 환자단체조차 “조직폭력배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정 대치가 115일째를 맞았다. 하지만 사태는 악화일로다. 진료 공백으로 인한 대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의료계·국회 등 한국사회의 주요 주체들이 모두 문제 해결·조정 능력을 잃어버렸다. 먼저 사회 필수집단인 의사들이 극단적 이기주의로 ‘대화 불가능한 집단’이 돼 버린 데 암담함을 느낀다. 협상에 나서야 할 대표 직역단체인 의협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걸림돌이고, 중재해야 할 국립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앞장서 파업을 주도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정책 추진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조정·대화에 나서야 할 정부는 ‘2000명 증원’만 고집하는 독선·불통으로 갈등을 유발하는 한 축이 돼 버렸다. 이런 벼랑 끝 대치는 윤석열 정부 들어 화물연대 파업 등에서 계속 반복돼 왔다. 행정명령만 휘두르는 정부는 극한 대립의 장기화를 초래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안게 된다.
의·정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 대표인 국회라도 나서야 하지만, 이번 의료대란에서 국회 존재감은 미약하다. 하긴 1%포인트 차이로 국민연금 협상도 매듭짓지 못한 국회 아닌가. 그러나 빅5 집단 휴진이 현실화되면 ‘직역 이기주의’도, ‘갈등 못 푸는 정부’도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의·정과 국회는 백척간두에 선 중증질환자들을 위해 대화·절충을 통한 사태 해결에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