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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글쓰기

“오밤중에 뭘 또 만들어?” 방문을 열고 나오며 형이 묻는다. 별도리가 없다는 듯 씩 웃고 만다. 도마 위에는 토막 난 애호박과 양파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오늘도 글이 잘 안 풀린 거야?” 형이 다시 묻는다. 나는 여전히 웃고 있다. 곧바로 들기름을 두르고 프라이팬 위에서 지지고 볶는 시간이 이어진다. 다진 마늘을 듬뿍 넣고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춘다. 이윽고 완성된 애호박볶음 위에 통깨를 솔솔 뿌린다. 오밤중에 뭘 또 만드는 시간이 끝났다. 시계를 보니 고작 20분 정도가 지났다.

원고가 잘 안 풀리거나 다 쓴 원고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요리에 돌입한다. 요즘 들어 요리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 것을 보니 헛웃음이 난다. 글쓰기 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요리 실력만 향상되고 있다. 20분 만에 내일의 밑반찬이 생겼다는 뿌듯함도 잠시, 오늘 하루도 공쳤다는 슬픔이 찾아온다. 글쓰기는 왜 매번 어려울까. 앉은자리에서 뚝딱 완성되는 기적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셈인가. 그럼에도 나는 왜 쓰는 일에 이리도 안달복달 매달리는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다 보면 언젠가 독의 밑이 밑반찬처럼 생겨날 거라 믿는 것인가.

언젠가 형이 물은 적이 있었다. 글을 쓰고 온 날이면 무척 피로할 텐데 왜 그렇게 요리에 매달리느냐고. “이건 완성이 되잖아.” 즉각적으로 튀어 나간 말이다. “싱겁든 짜든, 설익었든 푹 익었든 적어도 먹을 수는 있잖아.” 지금 돌이켜보니 이는 분명 나 자신에게 한 말이다.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성취감을 나는 요리를 통해서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요리는 음식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나타나니까.

요리하는 과정과 글 쓰는 과정은 묘하게 닮았다. 요리할 때 식재료를 준비해야 하듯,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상의 장면이나 단어를 그러모아야 한다. 식재료가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요리로 탄생하듯, 특정 소재가 어떤 장르의 글이 되느냐에 따라 글의 양상도 사뭇 달라진다. 처음 마주한 식재료 앞에서 난감하듯,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 앞에서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심하기도 한다. 익숙한 요리라고 해서 매번 맛이 같은 것은 아니다. 지난번과 똑같은 과정을 거쳤더라도 간이든 질감이든 맛이 묘하게 다르다. 글 또한 마찬가지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관해 쓰더라도 이전과 완전히 똑같이 쓸 수는 없다. 그사이 풍경도 변하고, 그 풍경에 깃드는 시선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요리와 관련된 동사를 떠올린다. 까다, 썰다, 저미다, 빻다, 으깨다, 갈다, 섞다, 붓다, 젓다, 녹이다, 굽다, 볶다, 튀기다, 찌다, 끓이다, 쑤다, 무치다, 부치다, 절이다, 조리다, 삶다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식재료라는 명사와 위의 동사가 요리라는 명사로 탄생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뿌듯하다. 맛있다, 훌륭하다, 환상적이다 등의 형용사가 절로 따라온다면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튀긴 음식이 기름 위로 고개를 내밀 듯 금세 완성되는 글도 있지만, 찌거나 삶는 것처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글도 있다. 죽을 쑬 때처럼 젓기를 멈추어서는 안 되는 글도 있다. 절여야 음식으로 완성되는 식재료처럼, 진득하게 기다려야 글로 탄생하는 소재도 있다.

더 알맞게 만들기 위해 조미료를 사용하는 것처럼, 나 또한 글 쓸 때 부사를 그런 방식으로 활용한다. 요리에도 글쓰기에도 적재적소가 필요하다. 막 완성된 음식을 맛보고 “아!”하고 탄성을 내뱉듯, 글쓰기의 마지막에 늘 감탄사가 깃들길 염원한다. 슬픈 일은 쓴다고 해서 다 읽을 만한 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역설적으로 먹을 만한 음식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되었다.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은 쓸 만한 사람일까, 오늘도 생각한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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