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기술이 만들 ‘최악의 미래’

이영경 기자
[책과 삶] 가상현실 기술이 만들 ‘최악의 미래’

은랑전
켄 리우 지음 |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 504쪽 | 1만8000원

축제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대학생 헤일리가 사망한다. 헤일리의 어머니 에비게일은 총기 규제 운동을 벌이는 단체의 설득으로 헤일리의 사진, 비디오, 녹음 기록 등 모든 것을 넘긴다. 헤일리의 사진과 영상은 몰입 영상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생생한 공감을 일으키며 총기 규제 여론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악몽으로 바뀐 건 순간이었다. 악성 댓글꾼이 나타나 비방글을 퍼붓고 헤일리의 영상을 편집하고 날조해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낸다. 헤일리는 욕설과 혐오발언을 내뱉거나 음란물에 등장하고, 밈이 되어 인터넷을 떠돈다. 에비게일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유해한 정보를 걸러주는 ‘갑옷’뿐이다. ‘갑옷’은 유해한 정보가 보이지 않도록 걸러줄 뿐, 실제 정보를 없애지는 못한다. 인터넷 분탕꾼(troll)들은 ‘갑옷’을 뚫고 조작한 영상을 보낸다. 에비게일이 쓴 증강현실 안경엔 헤일리의 피투성이 시신과 헤일리의 유령이 등장한다.

켄 리우의 단편소설 ‘추모의 기도’의 내용이다. 리우는 인공지능(AI), 딥페이크 등 최신기술을 통한 사이버 테러가 어디까지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그려내는 가상현실 기술과 사이버 테러의 극단적 미래는 암울하다 못해 끔찍하다. ‘비잔티움 엠퍼시움’에서는 가상현실을 통해 전쟁 난민 체험이 상품화된 상황을 블록체인 기술과 함께 다룬다.

<종이 동물원>으로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40년 만에 동시 수상하며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 환상문학 작가로 떠오른 리우의 신작 소설집 <은랑전>에 수록된 13편의 단편은 첨단기술에 대한 해박한 이해에 기반한 설득력 있는 상상력을 통해 독자들을 놀라움으로 이끈다. 동시에 기술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를 통해 낙담과 경각심도 함께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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