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없던 상법개정안 브리핑 개최해 배임죄 등 설명
공매도 관련 “상위 10~20개 종목 먼저 재개됐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상 특별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개정안을 추진하면서 배임죄 소송이 남발할 것이란 재계의 우려가 나오자, 배임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것이다. 배임죄는 형사범죄 중 가장 구성요건이 불명확해 검찰이 ‘걸면 걸린다’는 문제의식이 그간 많이 나왔다. 하지만 검사 시절 이미 배임죄로 여러 기업인을 기소한 전례가 있던 이 원장이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14일 예정에 없던 상법개정안 관련 기자 브리핑을 열고 “소액주주 보호 장치를 높이는 것과 배임죄 처벌을 없애거나 (배임죄 적용)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형사처벌 범위를 좁히는 것은 병행돼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임죄를) 일도양단으로 유지와 폐지 둘 중 고르라면 현행 유지보다 차라리 폐지가 낫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배임죄는 업무를 위임 받은 자가 임무를 위반, 즉 회사를 ‘배신’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거나 본인이 재상상 이득을 취할 때 처벌하는 죄다. 형법, 특정경제범죄 가중법이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발기인, 이사, 집행임원 등이 배임할 때는 상법상 특별배임죄가 원칙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배임죄 남발’은 최근 기업들이 상법개정안을 반대하면서 내세웠던 주요 이유였다. 경영진이 주주 이익을 기반해서 경영 판단을 하도록 상법개정안 충실의무 대상이 확대되면, 이를 근거로 소액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배임 고소고발을 남발할 것이란 우려다.
이 원장은 이러한 기업들의 우려가 일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배임죄가 미필적 고의로도 처벌될 수 있다면서 “주된 의도는 회사를 위한 것이라도 그 과정에서 일부 누군가 피해를 보면 다 형사처벌되는 구조”라며 “경영진 판단이 형사법정이 아닌 보드룸에서 균형감을 갖고 결정되도록 하고, 만약 다툼이 있으면 민사법정에서 금전적 보상으로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배임죄는 전 세계 주요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구조”라며 “현실적으로 폐지가 안된다면 구성 요건을 좀 더 명확히 해서 정말 나쁜 사적 목적 추구가 있다면 해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어 배임죄 폐지가 안된다면 기업이 민형사 책임을 면책받을 수 있는 경영판단원칙을 구체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판단 원칙 도입론은 단순히 선언적 형태로 도입하자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이사회가 중요 의사결정을 할 때 거쳐야 할 구체적이고 개별적 의무를 명시하자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임죄가 구성요건이 모호해 판결의 일관성이 낮고, 이로 인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는 지적은 그간 꾸준히 제기되긴 했다. 횡령 및 배임죄의 무죄율은 2021년 사법연감 기준 7.3%로 전체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그러나 이 원장이 공개적으로 배임죄 법리를 문제 삼으며 폐지를 언급한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다. 현재 법무부 소속이 아닌 것은 물론, 검사 시절 배임죄로 여러 기업인을 기소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검사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안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임원들을 배임죄로 기소했다. 이 원장이 합류했던 헐값매각 의혹 관련 론스타수사팀은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이달용 전 외환은행 부행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두 사건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원장은 “(검사 때와 비교해) 생각이 바뀐 건 전혀 없다”며 “법 집행기관으로서는 의율이 가능한 것을 고민을 해서 당연히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가리켜 “전현직 통틀어서 배임죄, 기업의 불법적 의사결정 관련 배임죄 의율을 제일 많이 해본 만큼 (배임죄에) 제일 고민이 많은 사람 중 한명”이라며 “내가 말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날 공매도와 관련해서도 소신 입장을 또 내비쳤다. 금융위원회는 전날 내년 3월 30일까지 공매도 전면 금지 연장을 의결했다. 그는 “솔직히 어제 의결이 있어서 지금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만 개인적으로는 상위 10개, 20개 종목 만이라도 또는 기관 중에서 정보관리시스템이 완비된 기관만이라도 일부 재개하는 게 가능하지 않나 하는 의견을 가진 적이 있었다”면서도 “자본시장 선진화라든가 기업 지배구조 이슈 등에 대해서도 정부의 입장이 공론화 과정에서 건강한 토론을 통해 정해지면 이를 최대한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부처 개각설과 자신의 거취에 관해서 “임명권자께서 결정할 문제지 제가 어떻게 한다 아니다 말할 건 아니다”며 “오늘 일은 오늘 일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