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규명을 위해 오는 21일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청문회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재발의를 앞두고 수사 외압 가해자이자 대통령실 연결고리로 지목된 이 전 장관, 외압 원인 제공자 격인 임 전 사단장, 피해자 격인 박 전 단장이 함께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번 청문회는 채 상병 순직 당시 상황과 책임 소재, 수사 외압 의혹의 실체를 드러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해 7월31일 박 전 단장이 임 전 사단장 등 8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특정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하자 이 전 장관은 승인했다. 그랬던 이 전 장관은 이튿날 돌연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박 전 단장이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자 국방부는 서둘러 회수했고, 군검찰은 박 전 단장을 항명죄로 입건했다. 회수한 사건기록을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는 당초 임 전 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최종 보고서에선 이 내용이 빠졌다. 결국 임 전 사단장의 혐의를 특정하지 않은 사건 기록이 경찰에 최종 이첩됐다. 이 모든 것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는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의혹의 뼈대다. 수사 외압의 윗선은 윤 대통령, 연결고리는 이 전 장관, 목적은 ‘임성근 구하기’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 격노설은 복수의 전언과 물증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국방부가 경찰에서 사건 기록을 회수한 지난해 8월2일 윤 대통령은 개인 휴대전화로 우크라이나 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과 세 차례 통화했고, 이시원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등 대통령실 참모들은 주요 국면마다 국방부·경찰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 전 장관 등은 이첩 보류 지시 등이 정당한 지휘권 행사라고 주장하는데, 행위의 위법성 여부를 다투는 건 나중 문제다. 국민들이 알고 싶은 건 당시 대통령실과 국방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다. 이 전 장관이 떳떳하다면 청문회에서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밝힌 뒤 ‘이게 뭐가 문제냐’고 항변하는 게 순서다. 이시원 전 비서관 등 대통령실 관계자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의혹의 실체가 상당 부분 확인된다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도 조만간 재발의될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야당 의원들은 팩트에 기초한 날카로운 질의로 채 상병 특검이 왜 필요한지 입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