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덕 주제네바 대사가 1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한국 정부가 ILO 의장국이 된 것은 2003년 이후 21년 만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데 대한 국제적 인정”이라고 평가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이에 걸맞은 성취를 보여줬는지는 의문스럽다.
정부의 평가는 낯 뜨거운 자화자찬에 가깝다. 한국은 1991년 ILO의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한국의 국제노동권지수는 2014년 이후 11년 연속 최하위인 5등급이다. 이 지수는 국제노총(ITUC)이 정부·사용자의 ILO 기본협약 위반 사례를 조사해 5개 등급으로 분류한 것이다. 노동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나라가 5등급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공치사에 앞서, 국제기준을 밑도는 한국의 노동현실이 부끄러운 상황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는 노동정책이 국제 노동기준과 충돌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동약자를 위한다면서 도리어 노조를 탄압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왔다. ILO 의견과 권고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ILO가 ‘법치주의’를 내세운 정부의 2022년 화물연대 파업 강경대응에 대해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서도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지난해 11월 노조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에 ILO가 환영의 뜻을 밝혔음에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 이런 나라가 무슨 ‘ILO 의장국’ 자격이 있다는 건가.
윤 정부 관료들은 한국이 ILO 차별금지조약에 비준한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보인다. 17일 국회 ‘최저임금 수용성 제고를 위한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최저임금을 왜 외국인노동자에게 일률적으로 높게 줘야 하느냐, 낮은 소득 국가에서 온 분들한테 대한민국 수준의 높은 최저임금 수준을 보장해줘야 하느냐”라고 했다. 여당 지도부가 외국인의 최저임금을 차별하자는 퇴행적인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는커녕,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제라도 정부가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을 멈추고,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의장국 선출의 의미가 있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