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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잘못 탔다

입력 2024.06.17 20:07

수정 2024.06.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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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기차 안. 객실에 오르자마자 나도 모르게 “아이고, 잘못 탔다”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기나긴 기차를 예매하며 몇호 칸에 앉는지 신경쓰지 않았다가 유아 동반석에 자리가 배정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내뱉은 말이었다. 객실 내의 한 어린 아기가 우렁차게 울음을 시작하자, 그 울음이 순식간에 전염되어 침묵하던 다른 몇몇 아기들을 금세 울리고 말았다. ‘앞으로 두 시간. 그리 길지 않을 거야’ 생각하고 늦은 밤 귀가 열차에서 눈을 짐짓 감았지만, 아기가 계속 울어 결국 잠들지 못했다. 실눈을 뜬 채로 아기가 우는 좌석을 바라보자, 아기 부모의 뒤통수가 아른거렸다. 앞뒤로 흔들거리는 머리를 보건대 아마 한창 아기를 달래는 중인 것 같았다. 부모의 어쩔 줄 모르는 모습도 짐짓 우는 아기만큼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해당 칸이 유아 동반석이라는 사실 덕분인지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혼내지 않고 다독여 천천히 그치게끔 해도 되는 분위기가 머무는 칸이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 그렇게 기차 안에서는 저마다의 작고 동그란 머리들이 울고 있었고, 아기 부모들은 아기들의 합창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르고 있었다.

아기가 울 때 부모의 초조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앉은 남자아이는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는 만화영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기차가 그리 무섭지 않고 나름 재밌는 공간임을 깨달은 아이 또래 몇몇의 까르르 소리가 함께 들렸다.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인 공간에서 ‘아이고, 잘못 탔다’는 씁쓸함이 다시 찾아왔다.

잠들기는 글렀다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다 뜬 채 기차 안을 서서히 둘러보았다. 눈을 감은 채 타인의 음성을 견딜 때는 괴로웠는데, 뜬 눈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낯선 주변 소리가 이내 당연한 모습으로, 또 금방 반가운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다. ‘우는 아기, 웃는 아이를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이지.’ ‘쿠쿵’ 소리와 함께 캄캄한 터널에 진입한 기차 안에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정말 귀한 장면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둠을 뚫는 기차와 함께 기억을 되짚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귀가 먹먹하다며 울던 내 모습과 비행기에서 내려 좋아하는 갈빗집에서 오락기를 갖고 놀던 내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 와서 아기와 아이의 동석을 꺼리는 나 자신조차 아기와 아이였다는 당연한 진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울고 웃기를 반복한 십수 년 아동·청소년 시기 동안 내 옆자리에 기꺼이 앉아준 어른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한없이 단호하고 조건 없이 친절한 수십, 수백 명의 어른이 나의 성장을 곁에서 응원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큰 나는 정작 인내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성숙했던 것처럼, 타인 앞에서 울지도 웃지도 않은 존재인 것처럼 여기면서 말이다.

강릉행 KTX 4호차. 총 5칸 중 유일한 유아 동반석이 있는 딱 한 칸. 한 아이의 성장을 함께 응원할 사람들이 많이 타면 좋겠다. 유아 동반석 인기가 뜨거운 나머지, 유아 동반석을 따로 두는 방식이 사라지고, 모든 칸에서 아이와 아기들의 웃고 우는 소리를 듣게 되길 희망한다. 부모와 아이의 삶이 나머지 시민과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되길 꿈꾼다. 대한민국 미래는 강릉행 KTX 4호차 인기에 달렸다.

변재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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