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열전

(13)자연사에서 가장 큰 비행곤충 ‘메가네우라’

석탄기 메가네우라 화석. 선명한 날개 시맥을 신경으로 착각하여 ‘거대한 신경’이란 뜻의 이름이 붙여졌다.  출처 GeologyPage

석탄기 메가네우라 화석. 선명한 날개 시맥을 신경으로 착각하여 ‘거대한 신경’이란 뜻의 이름이 붙여졌다. 출처 GeologyPage

낙원이라고 하면 어떤 풍경을 상상하게 되는가? “사자가 어린 양과 뛰놀고,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참 사랑과 기쁨의 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황량한 벌판보다는 울창한 숲, 춥고 건조한 환경보다는 따뜻하고 습한 환경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지구에 그런 시대가 있었다. 대략 3억5900만~2억9900만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그때를 석탄기라고 부른다. 석탄기의 지구는 동물과 식물에게 낙원이었다.

요즘 대기 중 산소 농도는 21%다. 그런데 석탄기 산소 농도는 35%에 달했다. 어떻게 산소 농도가 이렇게 높을 수 있었을까? 숲이 산소를 활발히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전에는 숲이 뭘 하고 있다가 갑자기 이때부터 산소를 뿜어내기 시작했단 말인가? 그 전엔 뭘하고 있었을까? 설마 숲이 자신의 본분을 잊고 태업하면서 산소 만드는 일을 게을리했을 리는 없다. 숲이 없었다! 아예 나무가 없었다.

익룡·새가 등장하기 전 석탄기
날개 길이만 75㎝였던 메가네우라
풍성한 숲과 높은 산소 농도낙원
같은 환경에서 호시절 누리다
산소가 줄고 지구가 냉각되자 위기

작은 잠자리에겐 그 위기가 기회
빠른 비행으로 숙련된 사냥꾼 변신

자연이 선택한 최고 포식자에서
자연의 선택으로 사라진 거대 잠자리
그 한가운데 ‘숲과 나무’가 있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숲이 없었다면 산소는 어디에서 왔을까? 식물이 없는데 동물이 살 수 있다고? 식물이 먼저 있고 동물이 있는 것 아닌가? 놀랍게도 식물은 동물보다 나중에 생겼다. 동물 세포에 있는 것들은 식물 세포에 대부분 있는데, 식물 세포의 세포벽, 액포, 엽록체는 동물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납득이 된다. 식물이 없어도 동물들은 잘 살았다. 숲이 없어도 동물들이 숨 쉴 산소는 충분히 생겨났다. 단 바닷속에서. 산소는 바다에서 생겼고, 동물도 바다에서 살았다. 바다의 시아노박테리아, 식물성 플랑크톤이 바다 동물들이 숨 쉴 산소를 만들어 공급했다. 지금도 산소의 3분의 2는 바다에서 만들어진다.

육상의 식물은 조금 더 일찍 생겼다. 주로 이끼류였다. 그러다가 석탄기 전 시기인 데본기에 식물들은 기가 막힌 장치를 하나 발명한다. 바로 관다발이다. 몸 안에 파이프를 만든 것이다. 관다발을 통해 높은 곳까지 물과 미네랄을 운반하게 되었고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 크게 자랄 수 있었다.

풍부한 이산화탄소가 만든 낙원

마침 지구에는 이산화탄소가 매우 풍부했다. 당시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금보다 다섯 배, 산업화 이전보다는 열 배나 높았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으니 당연히 온도도 높았다. 요즘 우리는 이산화탄소가 많아져 너무 더워서 걱정이지만 당시는 이산화탄소가 풍부하고 더워서 낙원이었다. 전체 지구가 초열대 기후가 되어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온도, 이산화탄소, 물이라는 광합성의 조건이 갖춰졌다. 식물에게는 낙원이다. 나무는 숲을 이루었으며 산소는 더욱더 많이 생성되었다.

석탄기 메가네우라 모식도.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날개 길이가 최대 75㎝에 이르렀던 메가네우라는 자연사에서 가장 큰 비행 곤충이다. 오른쪽은 메가네우라와 현생 왕잠자리의 크기 비교.  출처 | Escenarios prehistoricos·Dragon Fly Day

석탄기 메가네우라 모식도.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날개 길이가 최대 75㎝에 이르렀던 메가네우라는 자연사에서 가장 큰 비행 곤충이다. 오른쪽은 메가네우라와 현생 왕잠자리의 크기 비교. 출처 | Escenarios prehistoricos·Dragon Fly Day

풍성한 숲과 높은 산소 농도는 동물에게도 낙원을 가져다주었다. 숨을 곳, 알을 낳을 곳, 먹을 것이 풍부했으며 에너지 효율이 높아졌다. 여전히 작은 놈들이 많았지만 커다란 동물들이 더러 등장하기 시작했다. 땅에는 다리 길이가 50㎝에 달하는 거미, 체중 25㎏짜리 전갈, 길이 2.6m, 폭 55㎝, 체중 50㎏에 달하는 절지동물도 있었다. 노래기의 일종인 아르트로플레우라가 그것이다. 이름은 ‘관절로 된 갈비뼈’란 뜻이다. 아직 익룡이나 새, 박쥐가 등장하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하늘을 나는 커다란 동물이 있었다. (비록 하루만 사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살이는 날개 길이가 48㎝에 달했고, 잠자리는 날개 길이가 최대 75㎝에 이르렀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고추잠자리의 날개 길이 8㎝, 현생 잠자리 가운데 가장 큰 인진티시마잠자리(Petalura ingentissima)의 날개 길이 16㎝에 비하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갈 것이다. 가장 큰 바다갈매기나 매 크기라고 보면 된다.

이 거대한 잠자리의 이름은 메가네우라(Meganeura). 거대한(mega) 신경(neura)이라는 뜻이다. 메가네우라의 화석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고 있다. 1860년 프랑스에서 처음 화석을 발견했을 때 화석에 남은 날개 무늬가 하도 크다 보니 이걸 신경줄로 오해하여 붙인 이름이다. 실제로 날개에 신경과 혈관이 존재하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메가네우라 날개는 거대한 시맥으로 뒤엉켜 있어서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튼튼했으며 정맥이 펼쳐져 있어서 충분히 산소를 공급했다. 메가네우라는 지금까지 발견된 곤충 중 가장 크다. 곤충이니 다리가 여섯 개이다. 또 두 쌍의 날개가 있는데 동시에 다른 속도로 펄럭일 수 있었다.

거대 곤충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휴식

메가네우라의 행태는 현생 잠자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큰 눈으로 멀리서도 먹이를 발견하면 매우 유연한 날개와 복잡한 날개 근육을 이용하여 민첩하고 정교하게 비행하여 먹이 바로 위까지 올라가 호버링을 하다가 급강하하여 상대적으로 작고 가늘지만 바늘이 달린 여섯 개의 다리를 소쿠리처럼 사용하여 먹이를 낚아챈 후 강력한 하악골로 먹이를 부숴 먹었을 것이다. 강한 턱은 작은 곤충뿐만 아니라 양서류와 파충류 또는 어류까지 먹이를 가리지 않게 해주었다.

메가네우라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휴식시간이었다. 쉴 때도 날개를 접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다란 곤충이 날개를 접지 않고 있으니 파충류의 사냥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실제로 메가네우라 화석은 모두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메가네우라를 비롯한 곤충과 절지동물이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대한 숲이 산소를 엄청나게 생산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구에 처음 등장한 거대한 숲이 뿜어내는 산소 덕분에 당시 육상 절지동물은 거대하게 성장했다. 그런데 거대 절지동물들은 왜 모두 사라졌는가? 석탄기를 지나 페름기로 넘어가면서 산소 농도가 오늘날보다도 낮은 20%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산소 농도가 떨어지자 대형 절지동물은 더 이상 효율적인 호흡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거대한 몸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결국 쇠퇴와 멸종의 길을 걸었다. 아니 왜?

석탄기 메가네우라 모식도.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날개 길이가 최대 75㎝에 이르렀던 메가네우라는 자연사에서 가장 큰 비행 곤충이다. 오른쪽은 메가네우라와 현생 왕잠자리의 크기 비교.  출처 | Escenarios prehistoricos·Dragon Fly Day

석탄기 메가네우라 모식도.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날개 길이가 최대 75㎝에 이르렀던 메가네우라는 자연사에서 가장 큰 비행 곤충이다. 오른쪽은 메가네우라와 현생 왕잠자리의 크기 비교. 출처 | Escenarios prehistoricos·Dragon Fly Day

석탄기에서 페름기로 넘어가면서 지구에는 중대한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지구가 냉각되고 남반구에는 빙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석탄기에 널리 퍼져 있던 따뜻하고 습한 늪과 숲의 범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높아진 이유가 숲 때문이었던 것처럼,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낮아진 것 역시 숲 때문이었다. 지구 냉각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나무들이었다. 석탄기 동안 광범위하게 형성된 숲과 늪의 나무들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나무 안에 축적하였다. 나무가 죽으면 완전히 분해되지 못하고 석탄이 되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격리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 시기 이름이 석탄기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이 더 필요한 이유 역시 이것이다. 나무의 활동으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들자 식물의 광합성 양이 줄었고 그 결과 산소 농도도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얼마나 변했을까? 석탄기 초기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2000PPM(0.2%)에 이르렀다. 산업혁명 이전의 지구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PPM(0.02%), 기후위기에 봉착한 요즘은 400PPM(0.04%)인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수치다. 이것을 보면 석탄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높아진 게 아니다. 원래 훨씬 높았지만 서서히 낮아진 것이다.)

나무의 진화도 한몫했다. 석탄기 초기의 숲과 늪은 포자를 통해 번식하는 양치식물이 지배했다. 요즘의 양치식물은 고사리나 관중처럼 작은 식물이지만 당시에는 고사리나무라고 부를 만큼 거대했다. 노목, 인목, 봉인목처럼 수십m 높이의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는 양치식물이었다.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높은 산소 농도를 유지했다.

양치식물의 활발한 광합성으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줄어들자 지구 기후가 점차 차가워지고 건조해지면서 늪이 줄어들어 식물 군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이 감소하면서 씨앗이 있는 종자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종자식물은 겉씨식물이다. 꽃이 피는 속씨식물은 공룡이 멸종하기 직전에야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석탄기를 무턱대고 낙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속씨식물이 없으니 꽃도 없다. 꽃이 없는데 무슨 낙원인가!

문제는 양치식물보다 종자식물의 광합성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종자식물이 점차 우세해지면서 숲의 산소 생산 능력은 더 떨어졌다. 게다가 곰팡이와 박테리아가 대거 증가하면서 산소 농도도 줄어들었다.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구 기온이 떨어지자 얕은 바다 면적이 줄었다. 바다로 내려가야 할 물이 육지에 얼음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해수면이 낮아지고 대륙붕의 바다 부피가 줄어들었다. 바다 생명작용의 대부분이 일어나는 곳이 대륙붕이다. 해양에서 활발히 일어나는 광합성이 줄어들면서 산소 생산 역시 감소했다.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석탄기 말기에 최고치를 기록한 후 페름기에는 점진적으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높은 산소 농도에 의존해 살았던 메가네우라 같은 대형 절지동물은 생존이 어려워졌다. 그 결과 메가네우라는 다른 대형 절지동물과 함께 멸종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기후와 환경의 변화가 부른 명암

항상 그렇다.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큰 절지동물이 위기에 빠지자 작고 효율적인 생명체는 점차 진화하면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했다. 현대 잠자리는 크기, 생김새, 행동, 진화적 적응에서 메가네우라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석탄기에 이미 작은 잠자리가 먹이 경쟁에서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호버링, 추진 비행, 빠른 방향 전환 능력으로 숙련된 사냥꾼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소 농도가 높을 때는 메가네우라가 단순한 기관(氣管) 시스템만으로도 호흡할 수 있었지만 산소 농도가 낮아지자 호흡이 힘들었다. 하지만 현대 잠자리들은 더욱 전문화되고 효율적인 호흡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다.

지구의 기후와 환경이 변화하면서 메가네우라가 적응할 수 없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기후변화, 서식지의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낮은 산소 농도에 적응한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면서 메가네우라의 생태적 지위가 약화되었다. 온도와 습도가 낮아지면서 생겨난 종의 다양성 감소는 메가네우라를 비롯한 거대 절지동물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했다. 결국 자연선택이다.

메가네우라는 자연선택에 의해 최고 포식자가 되었다가 자연선택에 의해 멸종했다. 그 한가운데 숲과 나무가 있었다. 현대 잠자리가 낮은 산소 농도에 쉽게 적응한 것이 아니다. 현대 잠자리의 뛰어난 비행능력은 3억년에 걸친 처절한 진화의 결과다.

[멸종열전]숲 때문에 춤추다, 숲 때문에 날개 꺾인 ‘하늘의 지배자’

▲필자 이정모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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