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라던 대대장…원통하다”
사망 27일 만에 서울 용산역 앞에 분향소 마련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 쓰러져 이틀 뒤 숨진 박모 훈련병 어머니의 편지가 19일 공개됐다. 군인권센터가 박 훈련병의 수료식 예정일인 이날 서울 용산역 앞에 차린 분향소에는 추모하는 시민들이 발길이 이어졌다.
박 훈련병의 어머니는 군인권센터를 통해 공개한 편지에서 “오늘은 12사단 신병대대 수료식 날인데, 수료생들이 엄마와 아빠를 만나는 날인데 수료생 251명 중 우리 아들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12사단에 입대하던 날 아들이 ‘충성’하고 경례를 외칠 때가 기억난다”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경례를 의젓하게 말하며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등을 다독이던 우리 아들.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 적었다.
박 훈련병 어머니는 대대장 등 군 책임자를 향한 불신과 책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하게 훈련시켜 수료식 날 보여드리겠다’던 대대장님의 말을 기억한다”며 “우리 아들의 안전은 0.00001도 지켜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무엇으로 책임지실 건가, 아들 장례식에 오셔서 말씀했듯 ‘그날 부대에 없었다’고 핑계를 다실 건가”라고 했다.
박 훈련병 어머니는 아들이 취침시간에 ‘조교를 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네’라는 대화를 나눈 것이 얼차려의 사유였다며 “군이 씌운 프레임은 ‘떠들다가 얼차려 받았다’였다. 자대배치를 염두에 두고 몇 마디 한 것 뿐일 테다. 그게 그렇게 죽을 죄인가”라고 적었다. 이어 “군장을 다 보급받지도 않아 내용물도 없는 상황에서 책과 생필품을 넣어 26kg 이상 완전군장을 만들고, 완전군장 상태에서 총을 땅에 닿지 않게 손등에 올리고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선착순 달리기를 시키고, 구보를 뛰게 하다가 아들을 쓰러뜨린 중대장과 우리 아들 중 누가 더 규칙을 많이 어겼냐”고 되물었다.
아들이 쓰러진 후 군의 대처에 대해서도 “원통하다”고 했다. 박 훈련병 어머니는 “아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군에서는 부모가 올라와야 한다고 교통편을 알아봐 주겠다고 하더라”며 “우리가 어떻게 갈지가 아니라 아들을 큰 병원으로 옮길지 고민하라고 말해줬다.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식도 없이 처참한 모습을 보다가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응급헬기를 띄울 힘 있는 부모가 아니어서 너를 죽인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비통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나”라고 했다.
용산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추모가 모였다. 시민들은 음료 등 추모 물품을 제대에 올려 놓거나 ‘고귀한 생명이 나라를 위해 복무하러 갔다가 허망하게 갔다’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추모사를 써서 붙였다.
2015년 12사단에서 훈련소 생활을 했다는 우장민씨(30)는 “같은 사단 출신으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며 “사건이 터지면 꼬리자르기 하는 군대의 일 처리가 여전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우씨는 “군대에 불려갈 때는 대한의 아들이고 죽거나 다치면 남의 아들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들의 전역을 기다리고 있다는 김옥화씨(51)는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을 둔 부모로서 매번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군대는 아이들이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국가가 시켜서 간 건데 이런 일까지 겪어야 하나”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육군 12사단 소속이었던 박 훈련병은 지난달 23일 군기훈련을 받다가 쓰러져 이틀 후 사망했다. 경찰은 전날 해당 부대의 중대장과 부중대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 가혹행위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