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누가 큰 병 들었다는 연락 받았을 때
뭐 이런 날벼락이 다 있나, 무너지는 마음 밑에
희미하게 피어나던
어두운 마음
다 무너지지는
않던 마음
내 부모 세상 뜰 때 슬픈 중에도
내 여자 사라져 죽을 것 같던 때도
먼바다 불빛처럼 심해어처럼 깜빡이던 것,
지워지지 않던 마음
지울 수 없던 마음
더는 슬퍼지지 않고
더는 죽을 것 같지 않아지던
마음 밑에 어른거리던
어두운 마음
어둡고 기쁜 마음
꽃밭에 떨어진 낙엽처럼,
낙엽 위로 악착같이 기어나오던 풀꽃처럼
젖어오던 마음
살 것 같던 마음
반짝이며 반짝이며 헤엄쳐 오던,
살 것만 같던 마음
같이 살기 싫던 마음
같이 살게 되던 마음
암 같은 마음
항암 같은 마음 이영광(1965~)
마음은 들끓는 여름 갈라지는 땅바닥이었다가, 빙벽을 내달리는 눈발이었다가, 천둥 번개에 머리가 깨진 나무였다가, 흔들리는 간유리에 낀 그림자였다가,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짙은 얼룩이 되기도 한다. 마음은 붙잡아 둘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것. 어느 날은 “날벼락” 같은 소식에 무너져 죽을 것만 같다. 너무 어두워서 눈을 떠도 감은 듯하지만, “심해어처럼 깜빡이던” 아주 작은 빛 때문에 다 죽지 않는 마음이 있다. 여기가 끝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다 무너지지는 않”는 마음이 있어, 살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마음 밑바닥에 어룽대던 “어두운 마음”을, 그 어둠이 어렵게 품은 “기쁜 마음”을 우리에게 건넨다. 반짝거리며 헤엄쳐 오는 물고기 같은 마음, “살 것만 같던 마음” 하나를 우리 앞에 꺼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