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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상처받은 사람과 사회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

입력 2024.07.01 20:44

수정 2024.07.0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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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도래하여 사회의 생산 시스템이 첨단기술을 맘껏 활용하게 된다면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다. 1990년대 원진레이온 공장 마당에서 그곳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고통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지켜본 적이 있다. 그래도 미래의 노동은 달라지리라 기대했다. 당시 사건은 한국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뒤늦게 터져나온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일하다가 여럿이 죽는 것은 산업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점점 사라질 것이라 낙관했다. 날로 세련되어지는 건물과 사람들을 보며 나는 생산현장도, 노동도 달라진 줄 알았다.

아리셀 공장 화재사건은 일하다 죽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무려 598명. 숫자의 무게가 무겁다. 조사 대상 사건에서만 그렇다고 하는 것은 은폐된 죽음도 상당수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화재사건에서 돌아가신 스물 세 분 중 열 여덟 분이 이주노동자라는 것은 충격을 주기보다 이미 알려진 노동현장의 변화를 확인시켜주었다. 대다수는 파견직이며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아리셀 공장에 파견노동자를 공급한 업체는 화재가 난 이후에야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산재보험 가입을 신청했다고 한다. 더욱이 아리셀은 소위 위험성이 낮다고 인증된 사업장이었다. ‘위험성평가’ 인증심사를 통과했고 심지어 2021년부터 6월까지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이었다고 한다. 정작 노동자들은 위험물질을 다루는 데 필요한 안전교육은커녕 비상구가 어딘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사람의 안전과 보장이 가볍게 취급되는 한 한국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줄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위험의 이주화, 고통의 이주화가 언급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적이나 고용형태로 사람들을 나누고 차등화하는 자본의 기술은 고도화되었다. 고통의 범위가 좁아져 눈에 덜 보일 뿐, 고통은 줄지 않았고 고통받는 사람이 더 외로웠을 뿐이다. ‘타인의 고통’이 ‘타인만의 고통’이 된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덜어내고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데 사회보장제도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는 책 <위험사회>의 문구가 너무나 정확하게 들어맞아 화가 날 지경이다. 위험의 배분만큼 사회안전망 역시 불균등하며 불평등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특히 국적을 내세운 노동의 불평등과 배제에 대응하는 데 더욱 무기력했다. 이 와중에 서울시는 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형태로 외국인 노동자를 사회서비스에 더 널리 사용하겠다고 하니 나는 사회보장 전공자로서 걱정이 앞선다.

산재보험이든, 고용보험이든 우리의 사회보장제도는 사람을 위한 넓은 그물망이 되지 못한 채 누군가를 끊임없이 밖으로 밀어내고 분할시켜내는 한국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그저 뒤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흐름을 거스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산업안전에 관해 감독보다는 사업장의 자기규율 예방, 자율점검을 내세우고 있다니 이런 패러다임을 뒤집는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더 넓게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도 입증되었다.

사람도 상처받지만 사회도 상처받는다. 사람의 회복만큼 사회의 회복도 필요하다. 모두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건 원인의 진실을 규명하고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책임 있는 자가 사과하고 책임질 수 있다. 또한 진짜 변화를 이뤄내야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 상시 일하는 사람을 일용직으로 만들거나 파견노동자를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제대로 예방하고 보상할 수 있도록 우리의 노동과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짜는 것, 이것이 진짜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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