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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다시 ‘괴뢰’가 될 것인가

입력 2024.07.02 20:50

수정 2024.07.0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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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늦봄, 3명의 이등병이 철책 너머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교육을 받았던 신병들은 흩어지고 셋만 남아 GOP(일반전초)에 떨어졌다. GOP 부대의 주 임무는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 것이었다. 북쪽 산들은 무심하게 푸르렀고, 철책과 철책 사이는 고요했다. 흡사 시간이 멎은 듯했다(어떤 연유인지 몰라도 당시 남과 북은 확성기를 틀지 않았다). 그 고요가 기이하고 날카로웠다.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이등병 셋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산등성이에 납작 엎드린 벙커가 중대본부였다. 철모를 쓴 중대장이 벙커에서 나왔다. 전입신고를 받고는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고 이등병의 손을 잡아주었다.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오전에는 자고, 오후에는 작업, 밤에 경계근무를 섰다. 철책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었다. 우리가 철책이었다. 고참들은 언제 습격을 받아 무덤이 될지 모르니 초소를 깨끗이 청소하라고 했다.

밤이면 북한 병사가 소리쳤다. “남쪽 동무들아, 불고기는 먹어 봤냐.” “월북하여 자유 찾으라.” 월북요령이 적힌 삐라(대남전단)가 날아왔다. 월북한 남쪽 병사가 삐라 속에서 웃고 있었다. 한복 차림의 여인이 건네주는 고기반찬을 입을 벌려 받아먹고 있었다. 사진 설명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오누이가 이보다 살뜰할까.’

남과 북의 증오와 저주는 철책을 넘지 못하고 철조망에 걸려 있었다. 서울과 평양이 흐리면 철책부대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쳤다. 무수한 소문이 떠돌았다. 제대를 앞둔 누군가는 더덕을 캐다가 지뢰를 밟았다. 비가 오면 지뢰가 이리저리 쓸려갔다. 그런데도 지뢰를 매설했다. 지뢰지대는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군보다 아군의 지뢰가 더 무서웠다. 1969년 소위로 임관한 신대철 시인은 비무장지대 내의 최전방 GP(감시초소)에서 벌어진 일을 일기로 남겼다.

“1969년 4월5일 토요일, 해. 김 중사와 지뢰지대 인수인계를 했다. GP 일대와 골짜기를 둘러보고 그가 지뢰지대에 들어섰다. 순간, 쾅쾅쾅, 김 중사가 허공에 떠올랐다 떨어지면서 지뢰가 연발로 터졌다. 김 중사는 지뢰밭 한가운데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흙덩이를 뒤집어쓰고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임시 GP장으로 따라왔던 박 소위가 시신을 수습하러 한 발 옮기는 순간 다시 지뢰가 터졌다. 박 소위를 몇 걸음 옮겨놓고 어깨로 부축한 채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워커 뒤축이 떨어져 나가고 발뒤꿈치가 뭉개져 있었다. 그는 담담하게 ‘여기서 끝이군요. 감각이 없네요’ 하며 하얗게 웃었다. (…) 나는 여기서 온전히 살아 나갈 수 있을까?”(신대철 <극지 일기>)

발목지뢰에 다리를 잃고 울부짖는 사병을 목격했다. 사고로 죽어도 신문에 기사 한 줄 나지 않았고, 사망통지를 받고 황망히 달려온 부모에게는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남과 북만 있을 뿐이었다. 북쪽은 적색제국주의자들의 괴뢰이고, 남쪽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괴뢰였다. 국가는 민통선 밖에 있었다. 알아도 알 수 없는 적을 인수받아 제국의 앞잡이들끼리 ‘먼저 보고 먼저 쏘았다’. 누군가 죽어나가면 또 누군가를 투입했다.

남과 북은 20세기를 건너와 극적으로 서로를 인정했다. 다시는 최전선에 야만의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한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다시 철책이 위험하다. 북한군은 비무장지대에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남북 화해의 상징적 조치로 폭파해버린 GP를 복원했고, 경의선과 동해선 등 남북 연결도로 일대에 지뢰를 매설했다. 또 남한을 공식 석상에서 괴뢰라 부르기 시작했다. 군 당국은 최근 비무장지대에서 작업 중이던 북한군 다수가 지뢰 폭발로 숨지거나 다쳤다고 발표했다.

하늘엔 삐라와 오물풍선, 땅에는 지뢰, 바다에는 탄도미사일. 공포가 밀려온다. 요즘 부쩍 눈에 점착되어 잊혀지지 않는, 철책 광경이 떠오른다. 공포가 밀려온다. 대통령과 장관, 군 수뇌부의 대북 강경 발언이 수상하다. 이토록 극언을 아무 때나 퍼붓는 정권은 없었다. 남북관계가 부침을 거듭했지만 이토록 급속으로 냉각된 일은 없었다. 소름이 돋아 입에 올리기 조심스럽지만, 혹시 실정을 안보 이슈로 돌리려 강경책을 구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세상에 좋은 전쟁은 없다. 다시는 우리 장병들이 낡아서 너덜거리는 이념의 깃발 아래 지뢰밭을 걷게 해서는 안 된다.

김택근 시인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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