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핏대의 정치’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핏대의 정치’

‘격노.’ 윤석열 정부 들어 갑자기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된 단어다. 격노, 쉽게 말해 ‘핏대’가 처음으로 한국정치의 주요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잊을 만하면,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 수해가 생기자 환경부에 격노했다, 수능 킬러문항에 대해 교육부에 격노했다, 안철수 의원의 ‘윤·안연대’ 발언에 격노했다 등 끝이 없다. 윤 정부의 지난 2년은 ‘대통령 격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전시에는 나라의 존망을 좌우할 중대결정을 내린다. 전시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결정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대통령 격노 기사를 볼 때마다, “최고결정자인 대통령이 ‘분노조절장애환자’처럼 시도 때도 없이 핏대를 세운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해 왔다. 대통령이 자꾸 격노하면 장관과 보좌진은 올바른 보고를 하지 않게 된다. 대통령은 예스맨들, 즉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나라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대통령 스스로가 주변 인물들을 간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대해 윤 정부는 투표 직전까지 박빙승부를 자신하다가 압도적인 표차로 참패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윤 대통령 자신도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투표결과를 그처럼 엉뚱하게 예측하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핏대를 피하기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낙관론만 보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등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 갇혀 민심과 멀어졌다며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겼다. 하지만 자신이 지은 새로운 궁궐인 ‘핏대궁궐’에 갇히고 말았다.

윤 대통령의 ‘격노의 역사’는 꽤 길다. 금태섭 전 의원은 윤석열 대선캠프 시절 ‘김건희 리스크’에 대해 몇 차례 지적했지만 윤 대통령이 화를 내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건희 리스크가 오래전에 지적된 문제지만 윤 대통령의 격노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지금같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윤 대통령의 격노를 제일 먼저 경고한 사람은 그가 정치에 입문했을 때 첫 대변인을 맡았다가 도중하차한 이동훈 전 조선일보 기자다. 그는 윤 대통령의 초기행보를 보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항우를 빗대어 윤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해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이야기한다. 원로들 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고 증언한 바 있다.

걱정한 대로, 윤 대통령의 핏대는 비극적 결과로 치닫고 있다. 윤 대통령이 특검논쟁에 휩싸인 것이다. 지난해 윤 대통령이 폭우 실종자 수색작업 중이던 해병대 사병이 사망한 사건을 보고받고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을 연결하라고 했다는 주장이 쟁점이다.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이 이 정도 사건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화를 냈고 그 결과 핵심피의자인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이 수사대상에서 제외됐고 이에 저항한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을 항명혐의로 기소했다는 설이다. 이와 관련, 대통령이 수사 불법개입 논쟁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더욱 강해진 야권이 특검법을 다시 추진하고 있어 재통과는 시간문제다. 윤 대통령이 격노하며 임 전 사단장을 구명하려 한 배후로 김건희 여사를 의심하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임 전 사단장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사건 공범을 통해 김건희 여사와 연결됐다는 의혹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특검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수사에 불법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면 바로 탄핵사유라고 본다”고 말했다. 탄핵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최악의 경우 또 한 번 탄핵소동을 겪어야 하는 비극적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의 ‘핏대의 정치’를 보면서 미국의 대통령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여러 연구가 잘 보여주듯이, 대통령은 능력과 리더십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성격과 성정이다. 문제는 두 가지다. 앞으로 대통령을 뽑을 때 능력 못지않게 후보자의 성격·성정을 관찰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윤 대통령의 핏대를 남은 임기 동안 ‘관리’하는 것이다. 오랜 성격이 쉽게 바뀌겠냐마는, 윤 대통령이 화가 날 때면 격노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다스리라는 충언을 진심으로 드린다.

대통령 격노 기사를 볼 때마다 많은 국민들의 핏대가 선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명예교수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명예교수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