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주에선 ‘예술’이 여행 길잡이다. 계곡과 캠핑장을 품은 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예술공원과 아틀리에가 포진해 있다. 양주시는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아트투어’를 선보이고 있다.
미술관 옆 ○○○…그곳에 쉼이 있다
양주시 장흥면 일대는 조선시대 ‘서산(西山)’으로 불렸다. 한양에서 볼 때 서북쪽에 있어서다. 서울과 가깝지만 산세가 깊어 왕의 사냥터로 자주 활용됐다. 고양, 의정부, 파주, 장흥은 1990년대 수도권 드라이브 코스로, 여름 나들이 명소로 손꼽히기도 했다. 현재 장흥면은 자연을 품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예술 감성을 충전할 수 있는 여행지로 떠올랐다. 그 중심엔 양주 시립미술관이 있다.
양주시는 일영봉, 응봉, 형제봉, 수리봉 등으로 둘러싸인 장흥계곡 일대에 미술관 단지를 조성했다. 그런데 단순히 작품만 감상하는 미술관이 아니다. 계곡, 조각공원, 캠핑장을 미술관 안으로 품어 시민들이 쉬어가는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입장권을 구매해 미술관으로 들어오면 전시실이 아닌, 드넓은 조각공원이 먼저 펼쳐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 민복진의 작품을 비롯해 국내외 30여명 작가의 40여점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도 가득하다. 친근하고 익살스러운 ‘고양이 가족’(김래환 작가), 귀엽고 앙증맞은 ‘풍선곰’(전강옥 작가), 알록달록 흥미로운 ‘돈키호테’(신상호 작가)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동심을 흔들어놓는다. MZ세대의 마음을 훔칠 만한 포토 스폿도 많다. 미술관을 바라보는 거대한 인간상 ‘히어’(나점수 작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소년상 ‘추억이 담긴 집’(김정연 작가) 등 미술관 앞 작품들은 방문객의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다.
미술관 앞 계곡은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제격이다. 돗자리와 물놀이 도구를 들고 미술관을 찾는 방문객도 많다. 계곡물이 깊지 않아 어린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 공원 중앙 분수대에서는 주말마다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어린이들의 즐길거리가 늘어난다. 미술관 계곡이 이어지는 끝자락에는 ‘미술관 옆 캠핑장’이 있다. 원래 미술관 부대시설이었으나 현재는 양주도시공사에서 관리, 운영한다. 카라반 시설이 있어 텐트가 없어도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오토캠핑장, 일반캠핑장 시설도 갖추고 있다.
양주를 닮은…장욱진·민복진미술관
양주 시립미술관은 권율로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미술관으로 구성됐다. 2014년 개관한 장욱진미술관과 2022년 문을 연 민복진미술관이다. 장욱진(1917~1990)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원래 양주시는 화가이자 수필가인 천경자미술관을 추진했지만 무산됐고, 이후 장욱진 미술문화재단과 인연을 맺게 됐다. 장 화백은 1960년대 양주에 속했던 덕소의 화실에서 작업을 했다. 이후 그는 서울 명륜동, 충주 수안보, 용인 신갈 등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미술관은 장욱진 화백의 작품을 모티브로 최-페레이라(최성희, 로랑 페레이라)건축이 설계했다. 장 화백의 작품과 그가 생전 강조한 ‘단순함’이 건축에 담겼다. 정면에서 보면 ‘하얀 집’(1969년)을 연상케 하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호작도’(1984년) 속 호랑이의 생동감이 담겼단다. 2014년 ‘김수근 건축상’, 영국 BBC ‘2014 위대한 8대 신설 미술관’, 한국건축가협회의 ‘2014 올해의 베스트7’ 등에 선정됐다.
2층 상설전 <새벽의 표정>에서는 양주의 자연을 닮은 장욱진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꿨다. 새벽에 산책하며 떠올린 감상들이 작품에 녹아들었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이달 28일까지 판화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장욱진의 황금방주>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92년 뉴욕 리미티드 에디션스 클럽(LEC)에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린 작가로서 장욱진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발간한 화집 <골든아크>를 재조명했다. 당시 LEC에서 발간한 현대 동양 작가의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이후 처음이었을 정도로 장욱진 화백의 작품은 미 예술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주옥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미술관의 계곡과 공원에 나들이를 오는 시민도 많지만, 최근에는 장욱진 작가 작품을 감상하려고 일부러 외지에서 오는 관람객도 많다”면서 “5월 한 달 동안 1만명 이상이 양주시립미술관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장욱진미술관에서 나와 다시 조각공원을 가로질러 길을 건너면 민복진미술관이 있다. 민복진(1927~2016)은 어머니, 가족, 인류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추상과 구상을 절충한 조형 세계를 구축한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다. 미술관은 민복진의 작품을 기증받아 세워졌다.
1층 기획전 <포옹, 단단하고 부드러운>에서는 6·25전쟁과 같은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고자 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2층은 개방형 수장고로, 민복진 작가의 마케트(작품의 원형) 9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우수진 양주시청 학예연구사는 “민복진 작가 조각품뿐 아니라 미디어 아티스트 문선우, 소마킴이 민복진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며 “미술관 기획에 맞춰 다양한 작가들의 협업작품도 지속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예술 꿈 키우는 아지트
양주의 미술관은 단지 보고 즐기는 공간을 넘어선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신진·중견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모텔 건물을 창작공간으로 꾸민 777레지던스는 회화, 사진, 복합매체 작가들을 위한 작업실로 쓰이고 있다. 또 777레지던스 입주작가들을 위해 개인전시, 워크숍, 오픈스튜디오, 기획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예술 꿈나무 어린이들도 양주에서 눈높이에 맞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양주시립미술관 인근에 있는 가나아트파크는 예술과 놀이가 맛깔나게 버무려진 곳이다. 블루스페이스는 국내 최초 ‘피카소어린이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피카소가 1950년대 제작한 드로잉, 도자, 판화 등이 전시되고 있다. 사진가 앙드레 빌레르가 촬영한 피카소의 사진들도 볼 수 있다. 가나어린이미술관에서는 어린이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전시가 열린다. 옐로우스페이스에서는 작가의 작품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멀리서 관찰하는 작품이 아닌, 보고 만지고 느끼는 예술을 체험하는 곳이다.
가나아트파크는 양주 예술의 씨앗이 움튼 곳이기도 하다. 1984년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인 토탈미술관을 2005년 가나아트센터가 인수하면서 미술관, 체험시설, 아틀리에, 조각공원, 야외 공연장 등 종합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또 양주에 가나 아틀리에를 세우고 작가들의 창작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이 일대로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수십 개의 작업실이 생겨났다. 양주의 예술은 장흥의 자연을 자양분 삼아 각양각색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입장권(5000원)을 구매하면 조각공원과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에는 휴관한다. 양주시립미술관과 캠핑장은 원래 이어져 있었지만 현재는 통행을 막아놓았다. 캠핑장을 이용하려면 양주도시공사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한다. 7~8월 성수기에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에서 양주시립미술관까지는 지하철 3호선 지축역에서 버스를 타거나 공유차 쏘카를 이용하면 된다. 지축역 인근에 쏘카존이 많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중소형차 기준 4시간 대여료가 2만~3만원대라 부담이 적다. 지축역에서 차로 약 20분이면 미술관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