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주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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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안전사고 분석 전문가

김의수 한국교통대 교수

김의수 한국교통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자동차 급발진 사고 논란’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다른 기관보다 종합적인 사고 분석이 가능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자동차의 뇌에 해당하는 ECU(전자제어장치)의 결함은 판별할 수 없기 때문에 급발진 분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고 재구성을 위해 차량의 EDR(사고기록장치) 분석을 통해 사고 직전 밸브와 브레이크 작동 상태, 속도 및 RPM 등의 정보를 얻는데, ECU가 오작동 상태라면 실제 물리적으로 액셀을 밟았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의수 한국교통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자동차 급발진 사고 논란’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다른 기관보다 종합적인 사고 분석이 가능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자동차의 뇌에 해당하는 ECU(전자제어장치)의 결함은 판별할 수 없기 때문에 급발진 분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고 재구성을 위해 차량의 EDR(사고기록장치) 분석을 통해 사고 직전 밸브와 브레이크 작동 상태, 속도 및 RPM 등의 정보를 얻는데, ECU가 오작동 상태라면 실제 물리적으로 액셀을 밟았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자동차 첨단화로 전기전자 부분서 급발진 발생 가능성 점점 높아져
전자제어장치 오작동 상태면 국과수도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 힘들어

시청역 사고, 방지턱부터 풀액셀 밟은 거라면 급발진 의심해볼 여지
웨스틴조선호텔 앞 4거리, 통행 방향 등 확인할 수 있는 표지판 세워야

태풍 글래디스로 어머니 잃고 ‘인재’에 대해 각성, 삶의 진로도 바뀌어
한국, 후진국형 안전사고 여전…범정부 차원 상설 기구 설치를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을 하다가 인도를 덮쳐 9명이 숨진 사고를 낸 운전자도 급발진을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 건수는 지난해만 해도 117건. 하지만 국과수가 차량 결함을 인정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2020년 8월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인정한 첫 항소심 판결이 나왔지만,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왜 이렇게 빈번해진 것일까. 국과수 판단은 100% 신뢰할 수 있을까. 차량 결함을 소비자인 운전자가 입증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에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지난 7일 김의수 국립한국교통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50)를 만났다. 그는 국과수 안전연구실장을 지낸, 국내 재난안전사고 분석 최고 전문가다. 자동차 급발진은 물론 전기차 화재,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는 안전 사각지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의수 교수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역주행 차량으로 인해 9명이 사망한 서울 시청역 인근 사고 현장을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의수 교수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역주행 차량으로 인해 9명이 사망한 서울 시청역 인근 사고 현장을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급발진 의심 사고가 빈번합니다.

“급발진 원인은 전기전자적인 결함과 기계적인 결함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어요. 차량이 점점 더 첨단화되면서 전자회로, 즉 전기전자시스템이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죠. 이로 인해 기계적인 결함보다는 전기전자시스템의 오류로 급발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요.”

- 급발진은 왜 생기나요.

“급발진은 차량의 동력원을 생산하는 구동부와 가장 큰 관련이 있어요. 그게 내연기관 자동차는 엔진이고 전기차는 모터예요. 우리가 시동을 켜고 풀액셀을 밟으면 공기량에 따라 연료 분사를 조절하는 밸브(스로틀 밸브)가 많이 열리고, 작게 밟으면 조금만 열려요. 그에 따라 연료 분사량이 달라지죠. 그런데 내연기관 차량의 급발진 초점은 액셀을 밟지 않았는데도 스로틀 밸브가 최대로 열리는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하냐고 하지만, 재연 실험을 통해 그럴 가능성을 검증한 SCI논문도 있어요.”

- 실제로 급발진이 발생한다는 방증이네요.

“ECU(Electronic Control Unit·자동차 전자제어장치)가 사람으로 치면 뇌에 해당해요. 여기에 불규칙한 전압을 줬다 뺐다 했더니, 액셀을 밟지 않았는데도 오작동해 스로틀 밸브가 열리는 상황이 재연된 거죠. 물론 이 상황이 나타나는 조건을 특정할 순 없었어요. 하지만 급발진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실험이에요. 그런데 전기차는 개념이 약간 달라요.”

- 어떻게요.

“전기차는 연료를 집어넣는 엔진 개념이 아니거든요. 액셀을 밟음으로써 전기신호를 줘서 모터를 구동시키는 개념이에요. 그래서 내연기관 차량처럼 연료가 많이 공급되면서 나타나는 급발진 형태와 다르죠. 하지만 전기차도 모터의 속도, 출력 등을 ECU에서 제어하니 ECU에 오류가 발생하면, 예를 들어 액셀을 안 밟아도 모터의 출력이 더 커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 2018년부터 지난 6월까지 국과수에 급발진 의심 사고로 감정을 의뢰한 경우가 471건에 달해요. 하지만 아직까지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없어요.

“국과수도 사고 분석에 있어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공학 분석 방법을 이용해요. 다만, 다른 기관보다 사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더욱 종합적인 사고 분석이 가능하죠. 주변 CCTV, EDR(Event Data Recorder·사고기록장치) 분석, 구동부 및 제동부, 조향장치 등의 기계적인 결함 등으로 나눠 분석이 진행돼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전기전자적인 결함을 분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사고 재구성을 위해 차 EDR 분석을 통해 사고 직전 밸브와 브레이크 작동 상태, 속도 및 RPM 등의 정보를 얻는데, ECU가 오작동 상태라면 실제 물리적으로 액셀을 밟았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죠.”

- ECU의 오작동에 의한 급발진인지를 알 수 없다는 건가요.

“ECU는 굉장히 복잡해요. 차량 제조사는 전자제어에 대한 로직(Logic)은 주문할 수 있지만 ECU를 직접 생산하는 게 아니고 대부분 수입해 장착하죠. 이 때문에 제조사도 급발진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쉽지 않을 수 있을 듯해요. 물론 제조사가 내용을 알면서도 공개를 꺼릴 수도 있지만요. 그러니 ECU와 관련해선 정보가 제한적인 국과수 등 조사기관은 더욱 ECU 결함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봐요.”

- 국과수마저 ECU를 검증할 수 없다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겠네요.

“지금으로선 ECU 자체에 대한 검사보다는 사고 정황과 EDR 데이터, 기계적 결함에 초점을 두고 분석을 해요. 운전자가 물리적으로 액셀을 밟고 안 밟고와는 관계없이 ECU 데이터상 스로틀 밸브가 열리고 RPM 속도가 상승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면 당연히 액셀 페달을 밟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스키드마크(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노면에 생기는 타이어의 미끄러진 흔적)와 제동 시점도 확인하죠.”

지난 1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역주행을 하면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차량이 완전히 파괴된 채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역주행을 하면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차량이 완전히 파괴된 채 서 있다. 연합뉴스

- 그러면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는 어떻게 보나요.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는 운전자 시점에서 보면 표지판 식별이 곤란해 도로 자체가 방향성을 거의 알 수 없게 돼 있어요. 만약 다른 차량의 흐름이 끊긴 상황이라면 거의 직진 방향이 역주행이기에 혼동하기 쉬워요. 게다가 가야 할 오른쪽 길은 완전히 꺾여 있어 운전자 시야에 잘 보이지 않죠. 그래서 역주행을 모른 채 사고가 난 도로로 들어설 수 있는데, 사고 차량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어요. 순간적으로 액셀을 브레이크로 오인한 것을 비롯해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해당 차량이 주차장에서 나와 방지턱 부분부터 갑자기 풀액셀을 밟은 게 EDR에 기록돼 있다면, 저라면 급발진을 좀 의심해볼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운전자들이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풀액셀을 밟지는 않으니까요.”

- 웨스틴조선호텔 앞 4거리 도로,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특히 밤엔 바닥이 더 안 보이기에 운전자 시각에서 봤을 때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막 올라왔을 때 사거리 각 도로의 통행 방향과 주행 가능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표지판 설치가 필요해요. 현재는 호텔에서 거의 직진 방향이고 실제론 역주행이 시작되는 초입에 진입금지 표지판이 하나 있지만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바로 이를 확인하긴 어려운 상태예요.”

- 자동차가 추돌 후 마지막에 천천히 서고 그때 제동등(브레이크등)이 점등했단 이유로 급발진이 아니란 주장이 있어요.

“전자제품이 고장나 안 되다가도 툭툭 때리면 작동할 때도 간혹 있잖아요. 자동차도 접촉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가 뭔가에 부딪친 순간 제자리로 돌아올 수는 있어요. ECU의 경우는 접촉 문제라기보다는 회로 이상이 전압의 불균일 공급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데, 충격 후 회로가 리셋돼 정상 상태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죠. 다만, 가능성은 희박해요.”

- 브레이크도 ECU가 먹통이 되면 제동등이 안 켜지고 EDR에도 브레이크를 밟은 기록이 안 남나요.

“브레이크가 정상이면 페달에 약간의 압력만 주어져도 제동등에 불이 들어오고 기록이 남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ECU가 일시적 오류가 아니고 완전 먹통이 되면 브레이크뿐만 아니라 스로틀 밸브, RPM 속도 등 모든 내용이 기록되지 않든지, 기록되더라도 운전 상태와 전혀 다른 내용이 기록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ECU 오작동으로 브레이크 기록만 빠져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죠.”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할 경우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음을 일부 증명해야 한다. 또 제조사가 법원 명령에 응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를 배상해야 하고, 영업 비밀을 이유로 자료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다.

- 21대 국회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음을 증명토록 하는 이른바 ‘도현이법’이 발의됐지만 결국 자동 폐기됐어요. 국과수도 하기 어려운 급발진 원인 규명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현실, 어떻게 봅니까.

“말이 안 되죠. 급발진이 이렇게 이슈가 되고 있음에도 자동차 제조사도, 정부도 국과수에 판단을 맡긴 채 거의 한발 뒤로 물러나 있잖아요. 지금처럼 일반 시민들이 급발진 공포를 가진 상황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관련 기관과 전문가들을 동원해 의구심을 풀어줘야 해요. 급발진 문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해외에서 한국차에 대한 이미지도 실추될 수 있어요.”

2022년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도현군(사망 당시 12세)의 이름을 딴 ‘도현이법’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제대로 심사하지 못해 자동폐기됐다. ‘도현이법’은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핵심이다. 연합뉴스

2022년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도현군(사망 당시 12세)의 이름을 딴 ‘도현이법’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제대로 심사하지 못해 자동폐기됐다. ‘도현이법’은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핵심이다. 연합뉴스

- 전기차 화재 문제도 심각해요.

“전기차는 바닥에 굉장히 많은 개수의 리튬 배터리가 들어가 있어요. 최근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에서 보듯 리튬 배터리는 구조상 배터리 자체가 손상되거나 외부에서 충격을 받으면 불이 나는데 하나에 불이 나면 옆의 배터리들까지 같이 영향을 미치며 열폭주를 해요. 강한 폭연과 폭발성을 보이죠. 게다가 리튬 배터리 안의 전해질이 가연성일 경우 그 전해질이 완전히 타서 소실되기 전까지는 소화도 잘 안되는 문제점이 있어요.”

- 충돌 등 문제로 화재 발생 시 차 문이 잠겨 운전자가 빠져나오지 못하더군요.

“도어 개폐 방식이 전자식으로 돼 있는 차량의 경우는 전기가 먹통이 되니 차 문도 작동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리튬 배터리에 일단 불이 나면 열폭주로 매우 짧은 시간 내에 폭발적 연소가 일어나기 때문에 운전자가 대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그래서 화재가 발생하기 전 배터리의 이상 상태를 미리 감지해 알려주는 BMS(배터리관리시스템)를 정부 차원에서 개발하고 장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어요. 시스템을 잘 개발해서 전기차를 생산할 때부터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법제화하는 것도 논의 중이고요. 하지만 차량이 갑작스러운 충돌에 의해 배터리가 손상돼 화재가 나는 것까지는 BMS로도 막을 수 없어요. 어떤 외부 충격에도 끄떡없게 배터리 주변 프레임을 굉장히 단단하게 만든다든지 해야겠죠.”

김의수 교수는 교통사고뿐 아니라 국내에서 발생한 각종 굵직굵직한 재난안전사고를 조사, 분석해왔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국과수에 재직하면서 태안 기름 유출사고(2007), 천안함 침몰(2010),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2014) 등 주요 사건에 대해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국과수를 떠나 교편을 잡은 지금도 이슈가 되는 다양한 재난안전사고 분석에 전문가로서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2006년 국과수 연구사로 특채됐던데,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까.

“대학(부경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전공과 관련한 5개의 1급 기사 자격증을 따고 영어·일어 공부와 학점 관리도 열심히 했어요. IMF 외환위기 속에서 1999년 LG디스플레이에 입사했고, 전공 공부를 더 해야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뒀어요. 부산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후 다시 LG전자에 입사해 연구소에서 근무했죠. 이후엔 삼성전자로 이직해 가전연구소에서 3년간 근무하며 15건의 특허를 따고 박사과정도 밟았어요. 그런 어느 날 국과수의 기계 직렬 특채 공고를 봤어요. 당시 자동차, 타워크레인, 플랜트 같은 기계 설비 관련 안전사고가 많았는데 국과수에 이를 담당할 기계공학 전공자가 없었거든요. 저는 안전사고 조사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한 채용이란 설명에 솔깃했어요. 운명일지 몰라요.”

- 어째서요.

“제가 부산 출신인데, 고3 때인 1991년 초대형 태풍 글래디스가 부산과 울산, 마산을 강타했어요. 산사태로 저희 집이 무너졌고, 어머니를 비롯해 마을사람 세 분이 흙더미에 깔려 돌아가셨어요. 산림조합중앙회 임업훈련원장이던 아버지는 뒷산 사방사업이 부실해 산이 붕괴된 ‘인재’라고 판단하셨어요. 수재민으로 동사무소 2층 판자 바닥에서 6개월을 살아야 했던 우리 가족은 그날부터 차량에 대형 스피커를 달고 국가를 상대로 싸웠어요. 하지만 소용없었어요. 공직에 있는 아버지에겐 정부의 압력이 들어왔죠. 어머니를 잃은 그 사고가 제가 안전과 재난, 특히 인재에 대해 크게 각성하는 계기가 됐어요.”

- 법공학을 국내에 학문으로 정착시킨 데 이어 국과수 내에 법공학부를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죠.

“다양한 사고를 접하면서 내가 한 감정 결과로 형사 및 민사 책임이 이뤄지고 이 결과를 통해 작게는 한 개인, 크게는 한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국과수의 감정서 문구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법 공부를 위해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편입해 2년 만에 졸업했죠. 그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국과수는 크게 법의학과 법과학 분야로 나누어져 있는데, 사고 원인 분석을 하는 우리 분야는 왜 따로 정립돼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해외 검색엔진을 뒤졌더니 미국·영국·일본 등 공판주의가 정착된 나라에는 이미 많은 법공학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어요.”

- 법공학이 구체적으로 뭔가요.

“사고 조사뿐 아니라 관련 법 개선 등의 예방활동까지 연계되는, 안전사회를 위한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학문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 국내 최초로 중앙대에 법공학 과목이 개설됐고, 저는 겸임교수로 출강했어요. 경찰·소방·변호사·손해사정사·기업 품질 및 소비자 서비스 담당자 등 많은 분들이 큰 관심을 보였어요. 또 국과수와 서울대의 업무협약 체결로 서울대 내에 법공학 전문 연구소가 들어서면서 저는 사무총장 직분으로 업무를 총괄·수행했고요.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국과수에 법공학부가 신설됐어요.”

김의수 한국교통대학교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자동차 급발진 사고 논란’ 등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여전히 낙후된 안전 수준과 대응에 머물러 있고, 안전 사각지대도 많다”며 “사고 조사에서부터 예방까지 전체를 총괄하는 범정부 차원의 상설 기구가 대통령실 또는 총리실 산하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의수 한국교통대학교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자동차 급발진 사고 논란’ 등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여전히 낙후된 안전 수준과 대응에 머물러 있고, 안전 사각지대도 많다”며 “사고 조사에서부터 예방까지 전체를 총괄하는 범정부 차원의 상설 기구가 대통령실 또는 총리실 산하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 2017년 국과수 안전연구실장에서 물러나 국립한국교통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뭔가요.

“국과수 조사는 책임자 처벌에 초점이 있기 때문에 예방활동에는 관심이 미흡해요. 그런데 국과수에서 근무하며 줄곧 느낀 게, 실제 사고 현장을 가보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원인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그러한 후진국형 사고가 계속 되풀이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사고 재발 예방을 위한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어요.”

그는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여전히 낙후된 안전 수준과 대응에 머물러 있고 안전 사각지대도 많다”고 지적했다.

- 안전 사각지대, 어떤 게 있나요.

“가령 꾸준히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집라인은 현행법상 삭도궤도시설로도, 유원시설물로도 지정되지 않아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있어요. 지자체에 관리·감독 권한이 없어 안전관리를 책임질 주체가 없는 실정이죠.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도 빈번한데 역주행을 막을 장치 설치가 제도권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아요. 에스컬레이터 안엔 굉장히 많은 부품이 들어가는데 부품 하나하나에 대한 인증 및 검사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고요. 이런 안전 사각지대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국교통대에서 법공학기술연구소장도 겸하고 있는 그는 최근 경찰청과 공동주관으로 ‘재난·안전사고 감식역량 과정’ 프로그램을 경찰과학수사관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각종 안전사고는 범부처적인 대응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지금이라도 사고 조사에서부터 예방까지 전체를 총괄하는 범정부 차원의 상설 기구가 대통령실 또는 총리실 산하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연 논설위원 jypark@kyunghyang.com

박주연 논설위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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