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야구 자체로 즐기고 싶지만…반복되는 호남 혐오의 언어들
제발,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내용으로만 화를 내고 싶다. 이해할 수 없는 투수 교체, 반복되는 실책, 무기력한 패배, 무기력한 연패만으로도 야구 팬의 일상은 충분히 힘들다. 지난 6월2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기아 타이거즈 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그랬다. 4회 초까지 기아가 14 대 1, 13점 차로 이기고 있었고 이 정도면 TV를 끄고 좀 더 생산적인 일(어떤 일을 하든 야구를 보는 것보단 대부분 생산적이다)을 하고 잠들기 전 기아의 승리 소식만 확인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롯데는 13점 차를 뒤집은 대역전극을 펼쳤고, 기아는 12회 연장 혈투 끝에 가까스로 15 대 15 무승부를 기록해 패배를 면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자정 5분 전까지 그따위 경기나 보고 열이 뻗쳐 잠을 설쳤지만, 그럼에도 경기 내용으로만 화를 낼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지난 7월1일 K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야구잡썰’에선 바로 그 6월25일 기아 대 롯데 경기를 다루며 ‘6·25 대첩’이라는 호칭과 함께 기아 타이거즈를 남침했다가 밀려났다가 휴전으로 무승부를 기록한 북한군 이미지로 묘사했다. 마침 날짜도 6월25일, 6·25 전쟁일이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북한군 대 국군 ‘드립’이 나왔지만, 13점 차 리드를 날려버리며 막장 경기를 한 팀을 북한군으로 묘사하는 걸 ‘야구잡썰’ 특유의 B급 유머 감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대상이 기아 타이거즈가 아니었다면.
만약 기아가 아닌 나머지 9개 구단 중 한 팀이 북한군으로 묘사된다면, 나올 수 있는 반응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북한군으로 묘사하다니 웃기네, 북한군으로 묘사하다니 너무하네. 하지만 기아 타이거즈라면 또 하나의 반응을 걱정해야 한다. 북한군으로 묘사하다니 적절하네. 당장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이 사주한 폭동이라는 주장을 ‘일베’(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나 TV조선 같은 보수 종편 채널에서 주장한 게 겨우 10여년 전이다. 해당 음모론을 여전히 진지하게 믿는 이들도 적지 않거니와, 진지하지 않게 장난처럼 가볍게 쓴다 해서 그 해악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모욕하는 말의 수행적인 힘은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다. 빨갱이라는 말이 범법자에 반역분자에 가까운 의미이던 시절부터 전라도 사람들은 빨갱이 소리를 들었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수구 세력의 악질적인 음모론과 그로부터 파생한 ‘전라디언’ ‘전라자치도’ ‘7시 그 지역’ 따위의 지역혐오 용어가 댓글을 막기 전 포털 스포츠 기사에서 수없이 반복돼 왔다. 이러한 누적된 맥락 위에서 기아 타이거즈에 대한 북한군 비유는 단순한 비유로 끝날 수 없다. 수없이 모욕당한 이들의 상처를 헤집는 동시에, 그 ‘드립’을 보고 서로 음습한 시선을 교환하며 낄낄대는 지역차별주의자들이 다시 한 번 승리의 경험을 즐기는 이벤트가 된다. 해당 방송이 문제가 되자 ‘야구잡썰’은 어정쩡한 1차 사과문을 올렸지만 “7시 또 피해의식 발동함?” 따위의 지역혐오 댓글이 달리는 걸 막진 못했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는 말소할 수 없다. 단지 억누를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역사에 반대한다는 암묵적 믿음에 금이 갈 때마다, 혐오의 언어는 그 틈새를 쉽게 비집고 등장한다.
기아, 4회 초까지는 14 대 1로 리드
롯데, 13점 차 따라잡고 승부 원점
연장 12회 혈투 ‘무승부’로 마무리
KBS 유튜브 채널 ‘야구잡설’에선
타이거즈를 남침 했다가 밀려난 후
휴전을 한 북한군의 이미지로 묘사
5·18이 북한이 사주한 폭동이라는
보수·일베의 주장과 다를게 없어
어정쩡한 사과문에 댓글은 더 가관
재미라는 미명 아래 방치되는 혐오
참 힘든 타이거즈 팬으로 살아가기
과연 ‘야구잡썰’이 ‘일베’ 같은 확신범일까.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고,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동안 인터넷 여론이나 커뮤니티에서의 ‘밈’을 익숙하게 활용해오던 그들이 2차 사과문에서 문제된 장면에 대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고 말하는 건 의문이다.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다. 인터넷 ‘드립’ 문화에 익숙하면서도 무엇이 차별적 맥락과 의도가 담긴 지역혐오 ‘드립’인지에 대해선 무지하거나 경각심이 없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동시에 섬뜩한 일이다. 잠실구장에 두산 대 기아 경기 시구를 하러 왔던 국회의원 배현진이 야유를 듣자, 적지 않은 언론이 이를 마치 원정 온 기아 팬들의 소행인 것처럼,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광주 연고 팀 팬들의 편파적이고 무례한 행동인 것처럼 보도하며 호남 혐오를 유도한 게 겨우 한 달여 전이다. 야구에 대한 여러 이슈나 인터넷 반응에 익숙하고 민감한 ‘야구잡썰’ 팀이 화제가 된 배현진 야유 사건의 호남 혐오적인 여론 흐름과 그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무지하거나 배운 게 없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야구잡썰’ 사태가 아찔한 건 해당 채널의 인기와 영향력이 꽤 커져서만도 아니고(물론 중요한 이유다) 공중파인 KBS에서 제작해서만도 아니며(매우 중요한 이유다) 인터넷 문화에 대한 무비판적 접근과 활용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사과문에서 “보다 재미있고 좀 더 유튜브스러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토로했다. 그 재미의 원천이라 할 인터넷 커뮤니티 언어 안에서 호흡하며 웬만한 경계심과 주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그 안에 스민 지역이나 여성, 약자에 대한 혐오의 흔적들을 무비판적으로 흡입할 수밖에 없다. 조지 오웰이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명료하게 말했듯,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
‘야구잡썰’의 사과문 댓글 중 “웃자고 한 썰에 죽자고 달려든다”거나 “재미로 한 비유인데 굳이 불편한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중립을 가장한 또 다른 가해의 말들은 확신범이 아닐 때조차 언어가 어떻게 생각을 타락시키는지 너무나 잘 보여준다. 이 사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야구를 야구로 즐기지 못하고, 방송을 방송으로 즐기지 못하고, 유머를 유머로 즐기지 못하는 도덕적 엄숙주의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야구를 야구로, 방송을 방송으로, 유머를 유머로 온전히 즐기기 위해 그것을 방해하는 혐오의 언어들에 대한 세세한 필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2015년 다음스포츠 풀카운트 개막 특집 동영상에서 기아 담당 스포츠 기자는 스스로를 “저는 그 유명한 홍어입니다”라 발언했다가 사과했고, 2020년 SBS 스포츠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ㅇㅈTV’에 출연한 야구해설자는 기아 타이거즈 진갑룡 코치와 전화하며 “가방에 항상 여권 있다. 광주 가려고”라 발언했다가 뭇매를 맞아 사과했으며, 근래 배현진 야유 사건을 계기로 한 번 더 호남 혐오와 비하가 쏟아졌다. 도무지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 혐오의 굴레를 경험하며 분노하는 이들이 왜 예민한 불평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혐오 앞에 과도한 예민함이란 없다. 둔감함이 있을 뿐. 악의라는 포자가 혐오라는 곰팡이로 번성하기 위해선, 둔감함이라는 습기 높은 환경이 필요하다. 그 환경을 개선해 청결한 상태로 야구를 보고 싶다는 당연한 호소를 기아 팬이라는 원죄로 대체 몇 년째 하고 있는 중인지 모르겠다. 시즌 144경기, 야구 경기 내용만으로 화내기에도 인생은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