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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에서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에서

몹시 뜨거운 날. 원주에 간다. 이제 지구는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로 진입했다고 한다. 과히 과한 말은 아닌 듯. 드디어 도착한 송골 마을. 입구에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모든 이웃의 벗 崔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 동학의 2대 교조인 최시형 선생의 피체지이다. 선생은 여기에서 포승에 묶여 서울로 압송되어 단성사 터에서 참수되었다 한다.

내리쬐는 땡볕. 작은 언덕에 자리잡은 초라한 초가. 기우뚱한 마당에 나무들이 있다. 뒤안엔 상수리나무, 밭가에는 뽕나무, 마당 입구엔 자두나무. 나무는 무엇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술렁술렁 몸을 일으킨다. 나무들의 느리고 느린 동작들은 나의 짧은 지혜와 조급한 성격으론 도통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너무 늦었지만 동학에 대한 관심은 공부로 이어지고, 꽃산행을 떠나면 동학의 흔적도 먼저 찾게 된다. 강원도 산간지방은 동학을 지켜낸 도피로와 겹치는 곳이 많았다. 최시형 선생의 사상 중에 향아설위(向我設位·살아 있는 나에게로 제사상을 차림)가 있다. 이는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를 정중하게 받들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나의 그림자와 나무 그림자가 한데 어울린다. 나무 앞에서 심호흡을 하면 나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지와 잎사귀를 응대하듯 흔든다. 깊숙한 표정으로 깊은 궁리에 빠지시는 나무들.

여기는 어디인가. “겨레의 거룩한 스승 해월 최시형 선생님이 관군 사오십 명에게 1898년 피체된 곳”이 아닌가. 한 인간으로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고비원주(高飛遠走·높이 날아 멀리 감) 길을 가다 관군의 추적에 결국 체포된 곳. 나무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깊은 얼굴을 일으키고 있다. 말하자면 바람 불 때마다 흔들흔들 몸을 흔드는 나무들.

나무들은 대지를 휘감고 올라와 줄기, 가지를 낸 뒤 날카로운 잔가지를 뻗으며 그 끝마다 잎을 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초라한 모양의 그림자까지 데리고 이제 떠나려는 내 발걸음을 몇번이나 붙잡는 나무들. 수령을 보면 이 집에서 벌어진 일들은 목격하지 못한 중년의 나무들. 아아아, 나는 퍼뜩 깨달았다. 100년도 훨씬 전 최시형 선생이 분명히 머물렀던 장소의 이 나무들이 지금 맞절로 작별의 예의를 갖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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