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당신, 라면 먹고 갈래요?”

글·사진 김창효 선임기자

전주 ‘함께라면’ 카페

지난 9일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큰나루종합사회복지관 ‘전주함께라면’ 공간을 찾은 대학생 최진균씨가 라면을 기부한 후 양재민 사회복지사와 함께 라면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지난 9일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큰나루종합사회복지관 ‘전주함께라면’ 공간을 찾은 대학생 최진균씨가 라면을 기부한 후 양재민 사회복지사와 함께 라면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회복지관 6곳에 문 열어 사각지대 위기가구 발굴
누구나 무료로 끓여먹거나 기부로 두고 갈 수 있어
고향사랑기금 2000만원 투입…시민들 나눔 확산도

“라면 먹고 갈래, 라면 놓고 갈래?”

전북 전주시 6개 사회복지관에 특별한 공간이 들어섰다.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와서 라면을 무료로 끓여 먹을 수 있고, 또 라면을 두고 갈 수도 있는 전에 없던 새로운 공유공간이다. 1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달 정식으로 문을 연 무인 라면카페 ‘전주함께라면’으로, 장기 은둔형 고립 가구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위기 가구를 사회로 끌어내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카페는 전주시 고향사랑기금 1호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전주시는 나눔의 선순환을 통한 위기 가구 발굴을 위해 ‘전주함께라면’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지난해 7월부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평화사회복지관에서 공유 무인카페를 시범 운영했는데, 1년간 1700여명의 주민이 공유 무인카페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이 중 42가구는 실제 지원 대상 가구로 발굴되기도 했다. 이들 가구는 한부모나 조손, 장애인 가구 등 기존 사회복지망을 통해 확인되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위기 가구다. 시는 이들을 복지공공서비스와 연결해 생계비와 의료비, 돌봄서비스 등을 지원하고, 이웃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주민 프로그램 참여도 연계하고 있다.

실직 후 심한 공황장애로 바깥 활동을 하지 않은 추영남씨(50대)는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왔다. 하지만 함께라면 쿠폰을 받고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이웃과 함께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평화사회복지관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나와 순환자원회수로봇(재활용 처리) 관리를 도맡아 한다. 그러면서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좋은 곳에 써달라며 복지관 정기후원까지 하고 있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스스로 여건을 바꿀 수 없는 이들은 추씨 외에 더 있다. 이들을 위해 지자체 등이 나서서 위기 가구를 발굴하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 있다. 공동체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이번 전주함께라면 사업에 참여한 복지관은 평화를 비롯해 전주, 학산, 전북, 선너머, 큰나루종합사회복지관 등 6곳이다. 이 사업에는 고향사랑기금 2000만원을 포함한 총 4000만원이 투입됐다.

지난 9일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큰나루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이명순씨(70대)는 손주와 함께 방문해 “맨날 라면 끓여달라는 손주랑 같이 여기서 함께 먹으니 참 좋다. 곧 방학이 돌아와 걱정했는데 이런 곳이 생겨서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라면을 기부하러 왔다는 대학생 최진균씨(23)는 “복지관 현관에 있는 라면 기부함 안내문을 읽어보니 취지가 너무 좋았다”면서 “고립 가구가 많다는데 꼭 필요한 일을 해주니 정말 고마워 방금 마트 가서 라면 한 상자 사 왔다”고 말했다.

시는 도움을 주고받는 이런 나눔의 공간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나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카페는 문을 연 후 하루 8~15명의 시민이 방문한다. 시험 공부나 모임을 위해 이곳을 찾은 학생들은 라면 1개씩 기부하기도 한다. 일부 시민들은 택배로 상자째 전달하는 등 십시일반 ‘나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기은하 큰나루종합사회복지관장은 “라면이라는 음식으로 고립 위험이 있는 시민들이 밖으로 나와 이웃과 함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면서 “그분들이 평소에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건강은 어떠신지 살피며 함께 사는 ‘이웃사촌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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