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니치신문에서 25년간 일한 요시나가 마미와 아사히신문에서 33년간 일한 아쿠자와 에쓰코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다. 일본 언론계의 남성중심적 문화에 지친 젊은 여성 후배들이 그만두는 것을 보고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의기투합한 이들은 프리랜서 기자 오카모토 유카 등과 함께 ‘생활 뉴스 코먼스(commons)’라는 매체를 지난해 7월 설립했다.
매체 이름 ‘코먼스’에는 연령·젠더·국적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유하는 공간, 공원’이라는 뜻을 담았다. ‘코먼스’는 올해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홈페이지를 공개해 현재 누적 페이지뷰 30만을 넘어섰고 기자도 10명 정도로 늘었다. 한국의 언론 상황을 취재하러 온 요시나가·아쿠자와·오카모토를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났다.
요시나가는 2년 간의 신문노련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남성중심적인 의사결정에 대해 참으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미디어를 맛보고 싶었다.” 그는 “많은 여성 기자들이 남성 중심적인 회사에서 참으면서 일해야 했는데 새로운 미디어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쿠자와는 2022년 10대 소녀들을 응원해온 단체 ‘콜라보(Colabo)’에 대한 취재를 했을 때 얘기를 꺼냈다. 그는 이 단체에 대한 방해 활동에 대해 취재하고 기사를 출고했지만 2개월간 보류됐다. 남성 데스크는 ‘코멘트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경해줬으면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아사히신문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까지 들어야했다. 아쿠자와는 “여성 이야기를 듣지 않는 신문”이라며 “젠더데스크가 있지만 남성이고 젠더데스크에서 통과돼도 편집국장 선에서 안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2023년 4월 기준 일본 신문·통신사 91사 중 여성 기자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20년 전에 비해 여성 기자 비율은 늘었지만 신규 졸업자 채용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5%가 되지 못한다. 여성 관리직 비율(9.7%)은 10%에 미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중이다. 오카모토는 “데스크 등 의사결정구조에 여성이 없다 보니 성차별, 성착취, 여성 빈곤, 성소수자 등에 대한 보도가 극단적으로 적다는 문제의식이 공통적으로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남성 중심 미디어에서 보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입을 모았다. 일본의 여성 중의원 비율은 9.7%, 참의원 비율은 23.1%, 도도부현 의회 비율은 11.8%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부족하다. 성별임금격차는 24.3%로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75만7000원을 받는다. 기업의 관리직에 종사하는 여성 비율은 12.7%에 불과하다. 혼인시에 남편 성을 따르는 여성 비율은 95%에 달한다.
이들은 여성의 절반 이상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현실, 여성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움직임에 대해 취재하고 있다. ‘회계연도 임용직원’이라는 1년 계약의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이 한 달에 십수만엔(수십만~백수십만원)의 급여를 받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곤란여성지원법’이 시행됐지만 이 법에 따라 이 여성들을 상담하는 노동자들도 비정규직이다. 아쿠자와는 “지원받는 여성도, 지원하는 여성도 비정규직으로 서로가 ‘곤란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본 사회의 성차별적 시선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요시나가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논란이 된 한 제약사 음료 광고에 대해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회사는 여성의 얼굴 위에는 “일, 육아, 가사노동 3명의 자신을 원하지 않습니까?”라는 광고 문구를 달았지만 남성에게는 “시대가 변하면 피곤함도 변하니까요”라고 달았다. 요시나가는 “여성이 3가지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며 “일본 사회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압력이 과하다는 걸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본 언론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요시나가 등 신문노련 조합원들은 2022년 ‘실패하지 않기 위한 젠더 표현 가이드북’을 출간했다. 성폭력 피해 보도시 주의할 점,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표현에서 고려할 점 등을 정리했다. ‘여성 특유의 배려’ 등과 같은 표현을 지양하자 등 실제 예시를 담은 책이다.
앞으로 ‘코먼스’는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매체가 되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여성들이 더 많은 권리를 획득해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를 가시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임아영 젠더데스크 겸 플랫 팀장 layknt@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