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30분경. 눈이 저절로 떠졌는데 몸이 개운했다. 얼마 만의 통잠일까. 아들이 태어난 후 우리 부부에게 열린 세상은 무척 아름다웠는데 어쩐지 잠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 생후 7개월 정도 된 아들은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드는데 이튿날 새벽 5시경 완전히 깰 때까지 중간에 서너 번을 더 깼다. 쓰러지듯 눈을 감고 자는 낮잠 한두 번으로 버텨온 참. 우리 부부의 다크서클은 광대 언저리에서 가실 줄 몰랐다. 이 여행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줄도 몰랐다.
‘생후 6개월 즈음이면 혹시 부부만 하는 마지막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출산을 2개월 정도 앞둔 시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예약을 해둔 것이었다. 다양한 사례를 취재한 결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마지막 기회라며 권하는 또래 부모들도 다수 있었다. 8개월만 돼도 소위 ‘엄마껌딱지’ 시기가 열리니까. 다행히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나서주셨다.
“걱정을 할 거면 가지를 말고, 갈 거면 걱정을 하지 말렴.”
어머님께서 말씀하실 때, 어쩐지 뒤에서 후광을 본 것 같았다. 두 분 덕에 비현실적인 여행을 다녀왔다.
거의 7개월 만에 제대로 자고 일어났을 때, 우리 부부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 레체 인근에 있는 작은 도시에 있었다. 마세리아 베르자리오(Masseria Berzario)라는 이름의 작은 숙소였다. 마세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농장’이라는 뜻이다. 농장 주인이 아침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는,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펜션인 셈이다. 주인 루치아나는 말했다.
“우리 가문이 오래 소유했던 농장이었어요. 2006년부터 숙박업소로 고쳐서 운영 중이죠.”
숙소 주변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는 나가야 슈퍼마켓에 갈 수 있었다. 마당에서는 귀여운 게코 도마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수영장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았다. 뜨겁고 건조한 대기 아래 적당히 차가운 물과 넓은 그늘. 젖은 몸을 늘어뜨릴 수 있는 선베드까지.
아침은 숙소에서 내줬다. 직접 만든 잼과 요거트와 클래식 카푸치노. 인근 베이커리에서 만든 빵과 인근 농장에서 수급한 계란을 매일 먹었다. 제철이라며 내온 오디 열매도 직접 손으로 딴 것이었다. 점심은 거르거나 빵 한 조각 정도로 해결했다. 저녁은 그날 당기는 메뉴를 지도에서 검색해 평점이 좋고 관광객이 적어 보이는 식당에서 먹었다. 거의 모든 게 즉흥이었는데 아무것도 어렵지 않았다.
모든 일정은 자동차와 함께였다. 아담한 크기의 도요타 SUV 한 대를 빌려 열흘 남짓의 일정 내내 1150㎞를 달렸다. 이탈리아 영토를 긴 부츠 모양으로 봤을 때 레체는 남동쪽 언저리, 그러니까 뒷굽이 시작되는 곳 근처에 있다. 우리는 일정의 절반을 남동쪽에서, 나머지 반을 남서쪽에서 보냈다. 마지막 1박은 로마에서 보냈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했으니까.
육아 피로 풀러 떠난 이탈리아 남부
열흘간 시골서 휴식 즐긴 뒤 로마로
‘관광은 20대에 끝났다’ 건방진 생각
유적들 돌아보며 한나절 만에 깨져
여행이란, 편견 버리고 오감 여는 것
남서쪽에 있는 도시 살레르노에서 렌터카를 반납하기까지 알베로벨로, 마테라, 오트란토 같은 낯선 도시들을 두루 돌아봤다. 마테라는 대니얼 크레이그가 주연했던 <007 노 타임 투 다이> 오프닝 추격 신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했다. 알베로벨로는 흰색 외벽에 원뿔형 지붕을 얹은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명성이 높은 도시로도 유명했다. 알베로벨로에서는 한나절 정도, 마테라에서는 하루를 묵었다. 어떤 도시에서는 참 많이 걷고, 또 다른 도시에서는 바다에서 내내 쉬었다. 젤라토는 하루에 한 번씩 약속처럼 먹었다.
관광 계획은 전혀 없었던 로마에서의 첫날은 대부분의 시간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보냈다. 점심은 파스타, 저녁은 테르미니역 근처에 있는 중식당에서 먹었다. 이탈리아 음식에 좀 물릴 즈음 평가가 무척 좋은 중식당을 발견한 것이었다. 마지막 날 비행기는 오후 5시. 우리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트레비 분수와 판테온과 콜로세움을 도보로 둘러봤는데… 그때부터 슬슬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여행의 언저리에 불과했던 그 한나절의 로마가 순간순간 좋아지더니 결국 반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관광이 싫었다. 특유의 들뜬 분위기도, 너무 많은 사람도, 의무감에 찍는 사진도 싫었다. 지쳐 있던 탓이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가능하면 자연과 함께 회복하고 싶었다. 로마 이전의 모든 도시가 그런 분위기였다. 여행객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비슷한 무드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은퇴한 영국 부부, 요가를 수련하는 미국 가족, 이직을 앞두고 느슨한 시간이 필요했던 오스트리아 커플까지.
로마에서의 첫날을 미술관에서 보낸 것도 그래서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도장 찍듯 유적들을 둘러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판테온만은 보고 싶어서 걷기 시작했는데 어찌어찌 걷다 보니 트레비 분수를 만나 그 거대하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홀린 것이었다. 가운데 있는 조각상이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 양쪽에 있는 조각상이 바다의 신 트리톤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저 멀리 보이는 프라다 광고판, 트레비 분수 앞에 모여 있는 수백명의 관광객은 이 유서 깊은 아름다움을 가리지도 해치지도 않았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잔상처럼 지워졌다.
트레비 분수도 판테온도 이미 20년 전에 본 것이었다. 콜로세움이나 포로 로마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속으로 건방지게 생각했던 것이다. 관광하는 여행은 20대에 끝났고, 바쁘게 살았던 30대의 여행은 휴식이어야 했고, 출산과 육아라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지나는 우리의 여행은 자유와 여유로 채워야 한다고.
남부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을 테마로 잡은 것도 그래서였다. 자동차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으니까. 가고 싶었던 곳에 갈 수 없게 되면 다른 곳을 찾아 다시 달리고, 가다가 지치면 아무 가게에서나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가격은 1유로 정도였다. 서울처럼 특별히 맛있는 카페가 많은 동네는 아니었지만 어디서나 수준 이상의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었다.
판테온 근처에서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책에서 본 것도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앞에서 깨달았다. 우리는 어느새 부모가 되었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우리가 관광지라 치부했던 건물들은 하나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지칠 틈도 없었다. 새로운 호기심과 목표가 생겨났다.
“우리, 아들 데리고 언제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글쎄, 초등학교 들어가면 가능하지 않을까?”
“근데 그때 아들은 너무 어려서 이게 얼마나 멋진지 잘 모르지 않을까? 우리도 이제 알았는데.”
“그래도 많이 보여주자. 다시 여행 올 수 있게 돌아가면 일도 공부도 열심히 하자.”
여행이란 이런 걸까. 행동하기 전에 편견 같은 건 미리 갖지 말고, 그저 매 순간 오감을 열고 흠뻑 받아들이는 방법을 나이와 관계없이 새로 배우는 걸까.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멋진 건 역시 매일의 잠이었다. 밤 10시 즈음 잠들어 6시 즈음 깨는, 8시간짜리 깊고 귀하며 달콤하기까지 한 통잠. 이탈리아 남부의 수영장과 맑고 잔잔한 바다. 자동차 여행의 자유와 여유도 멋졌다. 하지만 로마의 아름다움을 도보로 둘러보는 관광에서 예상치 못한 황홀에 빠졌다.
그날 저녁 비행기로 귀국했다. 서울에 돌아오자 가족이 있었다. 어머님과 아들은 무척 친해져 있었다. 아들은 조금 더 자라서 웃고 있었다. 다시 육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대체로 고단하지만 이 역시 황홀하고 짜릿하게 행복한 일상. 여행은 금세 과거가 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다시 로마를 찾는 날이 올까.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