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신학기가 되면 개학식을 하듯, 4년마다 새 국회가 구성되면 개원식을 연다. 국회의원 전원이 본회의장에서 기립해 오른손을 들고 왼손에 든 선서문을 보면서 국회의장 선창에 따라 선서문을 낭독한다. 선서문은 국회법 24조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국회의장 개원사, 대통령 연설이 진행된다.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은 5월30일 임기가 시작되고, 이날부터 세비도 받는다. 하지만 국회의 공식 출범을 알리는 개원식은 그보다 늦다. 국회의장단 선출, 상임위원장 배분, 상임위 배치까지 여야 원구성이 끝난 뒤 개원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대 국회가 개원식을 거른 적은 없었지만 날짜는 제각각이었다. 1987년 개헌 이후 13·14·16·17·20대 국회는 6월에 개원식이 열렸다. 21대 국회는 의원 임기 시작 48일 만인 2020년 7월16일에서야 가장 늦게 개원식을 가졌다. 가까스로 제헌절을 넘기지 않았다.
22대 국회가 아직 개원식을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주도한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데 반발해 지난 5일 예정된 개원식을 보이콧했고,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불참을 요청했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원식을 열흘 뒤인 15일로 연기했는데, 민주당 주도의 ‘윤 대통령 탄핵 청문회’ 이슈까지 더해지자 여당이 개원식 불가로 맞섰다. 극단적인 여야 대치로 개원식은 제헌절도 넘길 듯하고, 자칫 9월 정기국회까지 늦어질 수도 있다.
개원식은 국회 관례이지, 법률상 반드시 해야 하는 행사는 아니다. 하지만 국회는 개원식을 통해 ‘국민을 위한 국회’를 다짐해왔다. 국회가 그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지 않지만, 이젠 그 개원식조차 제때 못하는 국회가 됐다. 우리 정치가 대결과 적대의 늪에 빠져 있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면 그 피해는 국민 몫이 된다. 벌써부터 22대 국회를 걱정하고 실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의원들은 의원 선서문을 읽어보고 정치와 민생의 무게를 새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