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얼마 전 강원도 영월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차창 너머로 담배밭이 눈에 띄었다. 마치 여름철 쌈 채소처럼 보이는 커다란 담뱃잎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예전에는 곳곳에서 담배 농사를 지었지만, 외국산에 밀려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담배 농사가 다른 농사보다 더 힘든 것은 수확철이 한여름인 데다가 기계 수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담배는 조선 중기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그 후 남녀노소가 모두 즐겼으며, 어전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담배는 ‘남령초’ ‘남초’ ‘연엽’ ‘연초’ 등으로 불렸다. 학명은 니코티아나 타바쿰(Nicotiana tabacum)으로, 누구나 기억하기 쉽다.

조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정조가 애연가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조는 심지어 과거시험에서 담배의 활용과 유래를 물었다. “여러 가지 식물 중에 사용함에 이롭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담배)만 한 것이 없다”라고 시작하는 정조의 책문(策問)에는 담배의 효능을 상세히 소개하며 적극 권장하였다(<홍제전서> 제52권/책문 5).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책 읽는 것밖에 없어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가슴이 답답했던 정조. 그 피로와 답답증을 풀어주는 명약 중의 명약이 담배였다. 그의 담배 예찬은 계속 이어진다. “화기(火氣)로 한담(寒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장을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안온하게 잘 수 있었다.” 정조는 기우제에 ‘술은 금하지만, 담배는 허락’하였다. 지금은 담배의 폐해를 모두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신비한 약초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생각을 골똘히 할 때나 불안하고 조급할 때, 또는 울화를 삭일 때도 담배를 찾게 된다. 이처럼 수시로 손이 가는 기호품도 많지 않다.

국민 건강을 위해 금연운동이 시행된 것은 1995년. 담배가 수입된 후 300여년이 지나서였다. 요즘은 흡연도 자유롭지 못하다. 공동주택에서는 흡연 문제로 갈등이 심하다. 도심 건물 한 귀퉁이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괜히 주눅 든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버스와 식당은 물론 비행기 내에서도 흡연할 수 있었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KT&G의 광고 모델 1순위가 정조였을 것이고 그의 담배 예찬론에 ‘좋아요’가 여럿 달렸으리라. 나도 한때 흡연가였기에 정조의 담배 예찬론에 공감하는 바 크다. 골초들에게는 정조 시대가 그리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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