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처럼 닮은 한국과 일본의 여성 기자들

임아영 젠더데스크

언론사 등 간부급 여성 비율 적어
한국의 성별임금격차 OECD 최고
가사·돌봄 노동 상시적 저평가도
의사결정구조에 여성 배치 늘어야

“일, 육아, 가사노동. 3가지 일을 함께 해낼 자신을 원하지 않습니까?”

일본의 한 제약사 음료 광고의 여성 모델 옆에 붙은 문구다. 남성 모델 옆의 문구는 다르다. “시대가 변하면 피로의 형태도 변하니까요.” 여성들을 위한 매체 ‘코먼스’를 창간한 일본 여성 기자들은 이 광고가 일본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을 1년 일찍 입학시키자는 국책연구원 보고서가 나오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에? 똑같아, 똑같아요.” 지난 4일 일본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똑같다’는 맞장구가 나올 때마다 함께 웃었지만 뒤끝은 씁쓸했다. 여성이 3가지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그런 압력이 여성에게 과도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상황은 한국과 일본이 흡사했다.

‘코먼스’를 만든 여성 기자들은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신문을 그만뒀다. 이들은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가 강한 언론계를 떠나는 여성 후배들을 보고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4월 기준 일본 신문·통신사 91개사에서 여성 기자 비율은 23%, 여성 관리직 비율은 9.7%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의 언론인 2021’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기자 비율은 31.9% 수준이다. 일본보다 많은 것 같지만 의사결정구조에서 여성이 부족한 현실은 똑같다.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지난해 10월 31개 언론사를 조사해 보니 국·실·본부장의 여성 비율은 12.8%, 부국장·에디터는 12.4%, 부장은 19.3%였다. 국·실·본부장과 부국장·에디터 비율은 2022년에 비해 더 떨어졌다.

‘일 잘하던 여성 기자들도 결혼 후 아이 낳고 나면 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십수년 전 입사 초 들은 말이다. 저출생과 소멸위기에 처한 지금 한국의 모습은 여성들에게 임금·가사·돌봄노동을 떠맡겨놓고 제대로 일하지 못한다며 비난했던 결과다. 여성들은 ‘결혼하면 일은 어떻게 하냐’라는 질문을 받으며 입직에서부터 보직과 승진에 차별을 받았고, 경력단절도 줄을 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큰 성별임금격차(31.2%)는 그 총체적 결과를 보여주는 수치다. 일본(21.3%)조차도 명함을 못 내민다. OECD가 괜히 한국 정부에 ‘인구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라’고 권고한 것이 아니다. OECD는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근로시간이나 교육, 연공서열 등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구조에서 여성들의 것으로 치부돼온 가사와 돌봄은 상시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의는 무산됐지만,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말이 나온 것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문제다.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최저임금 차등화는 성별임금격차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라며 비판했다. 숙박음식업,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등 여성 고용 비중이 높은 업종에 낮은 최저임금이 적용될 경우 성별임금격차가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비율은 37%인데 성별로 보면 남성은 29.8%, 여성은 45.5%다.

코먼스 기자들도 일본 여성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을 취재하고 있다. 일본에는 1년 계약의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한 달에 1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 여성들이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곤란여성지원법’이 시행됐지만 지원을 맡은 상담 노동자 중에도 여성 비정규직이 많다. 코먼스 기자들의 말대로 “지원받는 여성도, 지원하는 여성도 서로가 ‘곤란한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성별임금격차, 돌봄노동에 대한 저평가, 저출생, 여성 기자 비율까지 말이다. 여성 기자 비율이 증가하고 의사결정구조에서 여성이 많아지는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기사를 쓰고 어떤 기사를 주요하게 배치하느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코먼스에 합류한 오카모토 유카는 “데스크에 여성이 없다 보니 성차별, 성착취, 여성 빈곤 등에 대한 보도가 극단적으로 적다”고 했다. 거울처럼 닮은 두 나라 여성들의 모습을 더욱 많이 드러낼 수 있길 바란다.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를 가시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코먼스의 여성 기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임아영 젠더데스크

임아영 젠더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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