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 자하 두쿠레
아프리카 서부의 작은 나라 감비아에서 법으로 금지한 여성 할례를 다시 부활시키려던 움직임이 무산됐다.
16일(현지시간) 알자지라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감비아 의회는 전날 여성 할례를 금지하는 기존 법을 폐기하는 내용의 법안을 심의했다. 하지만 전체 의원 58명 중 과반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법안은 부결됐고, 감비아는 할례 금지를 유지하게 됐다. 수많은 여성과 인권단체가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 의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이처럼 역동적인 감비아 ‘할례 금지’ 역사의 중심엔 시민단체 ‘세이프핸즈포걸스’를 설립한 인권운동가 자하 두쿠레(사진)가 있다.
1989년 감비아에서 태어난 두쿠레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할례를 당했다. 할례는 어린 여성의 성욕을 통제한다는 목적으로 생식기의 음핵을 제거한 뒤 봉합하는 시술로,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며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15세가 되던 해에는 미국인과 강제로 중매결혼을 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지만 결국 이혼했다. 그는 두 번째 결혼에서 세 자녀를 낳았는데, 특히 딸이 생기면서 어린 소녀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2013년에는 세이프핸즈포걸스를 창립하며 본격적으로 할례 금지 운동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감비아 등에 설립된 이 단체를 통해 두쿠레는 할례가 종교적 근거가 없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불과하다며 이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수년에 걸친 입법 요구 끝에 2015년 감비아 의회는 할례금지법을 도입했다. 이후 두쿠레는 2016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꼽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고, 2018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세계적인 인권운동가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고향에선 그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감비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할례가 “종교적 미덕이자 중요한 문화”이기 때문에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쿠레는 “(고향에선) 하루에도 몇번씩 지옥에 갈 거라는 말을 듣는다”며 “나는 종교 지도자들과도 맞서 싸우고 있다”고 타임에 말했다.
그럼에도 두쿠레는 할례 금지 운동을 통해 소녀들을 보호하는 일이 자신의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내가 겪었던 고통을 아이들은 느끼지 않아야 한다”며 “소녀들이 두려움 속에 살지 않기를 바란다”고 타임에 말했다.
할례금지법이 만들어진 뒤로도 혼란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 감비아에선 보수단체 등을 중심으로 할례금지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이슬람교 이맘(지도자)이 “여성 할례는 종교적 의무이자 미덕”이라 주장하면서 할례금지법 폐지 운동에 불이 붙었다. 이후 의회에 법률 폐지 법안이 제출되자 감비아가 세계 최초로 ‘할례를 금지했다 다시 철회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인권단체가 다시 한번 이를 멈춰 세웠다.
의회에서 폐지 법안이 최종 부결된 뒤 두쿠레는 “우리는 또 한 번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섰다”며 “이런 문제가 다시 생기더라도, 우리는 다시 싸우기 위해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