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의 회빙환을 위하여
현찬양 지음
위즈덤하우스 | 140쪽 | 1만3000원
명나라 여인 사씨는 어느 날 조선 여인 민씨의 몸속에서 깨어난다. 조선 숙종 때로, 민씨는 투기로 폐위당한 뒤 친정집에 칩거 중인 인현왕후란다. 하지만 사씨가 알기로 자신은 한림학사의 부인 사정옥이다.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조카딸 아정이 요즘 저자에 유행한다는 ‘로환 소설’을 가지고 온다. 사모할 ‘로’에 돌아올 ‘환’을 쓴다는 이 소설에는 이른바 ‘회빙환’이라 불리는 회귀물, 빙의물, 환생물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사씨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내가 빙의물 안에 들어온 것이구나!’
<인현왕후의 회빙환을 위하여>는 ‘로판’(로맨스 판타지) 장르 안에 조선의 역사를 끌어들인 흥미로운 소설이다. 인현왕후에 빙의된 사씨가 소설을 끝내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장르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은 전형적이다. 민씨의 사촌이자 아정의 아버지인 민진후는 옅은 갈색머리에 부드러운 성정을 가졌다. 민씨의 집 앞을 지키는 흑발 머리의 금군은 남성적인 매력이 특징이다. 민씨, 그러니까 사씨는 때론 갈팡질팡해도 굳은 심지를 지녔다. ‘냉미남’과 ‘온미남’,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을 받는 여주인공. 로판 장르의 익숙한 기본 설정이다. 사씨는 아정으로부터 장르의 문법을 착실히 공부한 결과 ‘제대로 행복한 결말’을 맞아야 본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소설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이름 없는 여자들의 궁궐 기담> 등 미스터리 연작을 선보였던 현찬양 작가의 작품이다. 대학원에서 순정 만화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 작가의 관록이 곳곳에 묻어 있다.
작가는 인지하고 심약하기만 한 인물로 알려진 인현왕후의 다른 모습을 본다. 기록에 따르면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불러다 매질을 하는가 하면 숙종에게 패악질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현왕후의 면면에 자신의 상상력과 로판 장르를 덧입혀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의 53번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