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간다. 아리셀 참사는 2024년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사회적 참사’다. ‘사회적 참사’는 사고의 원인이 개인의 잘못과 불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공백을 비롯한 사회적인 것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 누구나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기에 참사의 피해 역시 개인이 혼자 감당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의지를 담고 있다.
배터리는 어디서든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화학물질로 만든 물건이다. 화재가 난 아리셀 공장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리튬배터리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배터리는 국가 안보에 필요한 군사작전용 무전기에 쓰였다. 1차전지라고 불리는 일회용 배터리는 폭발에 취약하다. 재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는 전체 용량의 20~30%를 충전해 포장하지만, 1차전지는 100% 충전해 출하한다. 그만큼 에너지 밀도가 높고 화재 위험이 크다. 불량품이 제대로 검수되지 못하고 충전된 상태에서 폭발하면 다른 배터리로 순식간에 옮겨붙는다.
사고 당일 CCTV 영상을 보면 쌓아둔 배터리에서 연기가 난 지 불과 몇십초 만에 3만5000개의 배터리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연쇄 폭발을 막으려면 불량품 검수를 철저하게 하고, 포장된 배터리를 조금씩 나누어 분리 보관하며, 열 감지 센서 등을 비치해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자동으로 소화장치가 작동하도록 해야 했다. 리튬 등 화학물질이 폭발하는 경우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짙은 연기가 발생하므로 내부 공간을 단순하게 설계하고 대피로도 여러 방향으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법과 제도에 이러한 내용이 없었다. 아리셀이 지난 3년간 위험성 평가 인정심사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아리셀은 가장 위험한 공정인 배터리 검수 및 포장공정에 숙련된 노동자가 아닌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를 불법적으로 사용했다. 사업장 주소지가 동일한 인력공급업체를 만들어두고 더 영세한 무허가 인력업체를 이용해 사람을 실어 날랐다. 이윤의 논리 앞에 생명을 지키기 위한 안전교육은 무시되었다. 위험업무의 도급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지만, 공장 내 가장 위험한 공정이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지고,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힘없는 이주노동자로 채워지는 ‘위험의 이주화’ 과정에서 법과 행정은 놀랄 만큼 무기력했다. 체류 외국인 3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위험의 이주화’를 방지할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면 제2, 제3의 아리셀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리셀 참사는 사회적 참사다. 참사의 원인은 사업주의 법 위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법과 제도의 부족함에도 있다.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구성원 모두는 참사의 책임과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의 피해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사회적 연대에 기초해야 한다. 진심으로 위로하고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필요한 제도를 개선하고, 이를 기록에 남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사회적 참사에 외부세력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