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살해 무죄’ 선고한 원심 파기환송
“계획적 살해 아니라 미필적 고의여도 인정”

계모와 친부의 학대에 시달리다 숨진 고 이시우군의 친모가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대법원이 12살 의붓아들을 200회에 걸쳐 상습 폭행해 숨지게 한 계모에 대해 아동학대 살해 혐의를 유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아동학대 살해에서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면 ‘살해 범의(범행 의사)’에 포함된다”는 법리를 재확인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아동학대 살해), 아동복지법 위반(상습 아동학대, 상습 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계모 A씨(44)와 친부 B씨(47)의 상고심에서 아동학대 살해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지난 11일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인천 남동구 논현동 자택 아파트에서 의붓아들 고 이시우군(당시 12세)을 약 200회 넘게 연필과 가위 등으로 때리고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B씨 역시 아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하고, 아내의 학대 사실을 알고도 방임한 혐의를 받는다.
이군은 2021년 12월에만 해도 몸무게가 38㎏이었는데 상습 학대로 인해 숨진 지난해 2월7일 기준 29.5㎏(신장 149㎝)로 급격히 줄었다. 또래 평균보다 15㎏가량 적은 수준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이군이 사망하기 이틀 전 눈을 가리고 16시간 동안 의자에 묶어놓은 사실도 드러났다. 사망 직전 눈에 띄게 야윈 이군의 모습과 잔혹한 학대 사실이 공개되면서 공분이 일었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8월 1심에서 각각 징역 17년과 3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재판부는 “A씨의 살해 고의가 미필적으로라도 있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아동학대 살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선고 이후 이군의 친모는 “명백한 살인행위인데 1심 판결이 가해 행위에 대한 형량을 담지 못하고 있다”며 직접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2심 판단도 원심과 같았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아동학대 살해죄에서 살해 범의를 판단할 때 ‘미필적 고의’도 인정된다는 법리를 재확인했다. 대법원은 “아동학대 살해죄에서 살해 범의 인정 기준은 살인죄 인정기준과 같다고 봐야 한다”며 “반드시 살해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본인 행위로 인해 아동에게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했으면 미필적 고의로서 살해 범의가 인정된다”는 법리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부검감정서에 의하면 이군은 지속·반복된 중한 학대로 심한 저체중 상태에서 구타 등으로 여러 둔력 손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저혈량 쇼크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A씨가 살해의 확정적 고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2021년 3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으로 도입된 아동학대 살해죄에 대해 아동학대 살해의 고의 인정 기준을 판시하고, 그에 따라 A씨에 대한 아동학대 살해의 고의를 인정했다”고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