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새로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내정자가 발표됐다. 유상임 서울대 공대 교수다. 사실 과기정통부는 이른바 ‘핫한’ 정부 부처는 아니다. 국회 인사청문회 뒤 누가 장관으로 최종 임명되더라도 국민은 잘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
이유가 있다. 과기정통부가 벌이는 사업 대부분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먼 미래를 내다보며 추진되는 ‘심심한’ 일이어서다. 현세대가 아니라 자녀 세대가 혜택을 볼 사업도 많다. 당장의 내 일상과 과기정통부가 하는 일의 간격은 작지 않다.
그런데 과기정통부 업무 가운데 인공지능(AI)은 좀 다르다. 최근 ‘챗GPT’의 등장으로 AI는 일상 속으로 확 들어와 온갖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당장 내년에 어떤 능력을 지닌 AI가 개발될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사람처럼, 어쩌면 사람보다 더 수준 높은 생각과 말을 구사할 AI가 머지않아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AI와 관련한 과기정통부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AI가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도록 발전 속도를 높이는 진흥책,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공공선을 보장하며 윤리적으로 굴러갈 수 있게 하는 규제책을 만드는 일이다.
이 가운데 과기정통부, 즉 정부 입장에서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규제책이다. AI 발전은 본질적으로 기업 몫이다. 정부는 기업을 도우면 된다. 반면 AI 규제는 정부 같은 공공 부문이 나서야 한다. 개별 기업이 AI 발전으로 얻을 이윤을 버리면서까지 윤리를 강화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 내정자가 향후 과기정통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그가 이끌 AI 윤리는 어떤 방향일까. 가늠할 단서가 있다. 2020년 유 내정자는 ‘성적지향(동성애)과 성별정체성(남녀 외에 수많은 성별) 등을 차별금지 사유에 포함하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에 반대하는 전국 317개 대학 1857명 교수 성명에 참여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취지는 간단하다. 어떤 사람도 평등을 누릴 권리를 불합리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다. 2007년부터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이어졌지만 제정은 매번 좌초됐다. 가장 핵심적인 논란거리는 바로 성적지향과 정체성의 문제였다.
공학도 출신에, 주요 업무도 연구·개발인 과기정통부 장관 내정자가 이런 사회 참여 경력이 있다고 한들 큰 문제가 될 수 있겠냐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AI는 세상을 보는 시각을 저절로 갖추지 않는다. 결국 인간의 판단 방향, 더 정확하게는 AI 윤리 기준을 만드는 정책 결정자들의 의지가 투영되기 마련이다. AI 윤리와 관련한 국가 정책을 이끌 최고위 공직자인 과기정통부 장관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유 내정자에게 묻는다. 장관이 된다면 AI 윤리 정립을 위한 국가 정책을 수립하면서 4년 전 교수 집단성명에 참여했던 때와 같은 입장으로 임할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세상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대법원은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일부이기는 해도 인정한 대법원 최초의 판단이다. 유 내정자의 빠른 답변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