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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참사는 리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입력 2024.07.22 20:37

수정 2024.07.2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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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리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참사는 리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위험물을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대피할 통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작업장이 있었고,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라는 듯 사람을 ‘쓰면서’ 정작 위험할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기업이 있었다. 리튬에는 책임이 없다. 그런데 아리셀 참사 이후 정부의 재발방지대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로운 소방기술 개발”을 주문했다. 어느 때나 할 수 있는 ‘아무말’에 가깝다. 리튬전지 화재 진화가 어렵다는 사실은 정부도 아리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리튬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위험물로, 지정된 수량만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저장하거나 취급해야 한다. 아리셀은 주의를 기울이기는커녕 과도하게 많은 전지를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에 쌓아두고 있었다. 국가의 안전 규제가 실패한 결과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오히려 “규제와 처벌만으로 산업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소방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노동자들더러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이다. 이처럼 원인을 왜곡하는 재발방지대책은 참사를 지속시킨다.

노동안전재해는 숨어 있던 위험이 갑자기 튀어나오면서 발생하지 않는다. 작업과정에 상존하는 위험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구조가 무너질 때 등장한다. 기계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예상되는 공정을 빗나가는 경우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작업하며 다루는 물질이나 기계, 자신의 동선이나 동작이 어떤 위험과 연결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을 통해 습득한 정보는 실제 작업 과정에서 동료와 상호작용하며 몸에 익히는 숙련으로 이어져야 한다. 위험을 느꼈을 때 바로 일을 멈추고 문제를 확인하고 개선을 시도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위험을 다스려야 한다. 단체행동의 권리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아리셀의 불법파견처럼, 기업이 필요에 따라 사람을 ‘더 싸게’ ‘썼다 버렸다’ 할 수 있게 하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이 구조를 무너뜨려왔다. “혁신적인 원가절감, 납기준수를 통해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에스코넥 아리셀 홍보문은 “급구 좋은 일자리 배터리생산 검사 포장 면접 없음”이라는 메이셀의 구인 글이 된다. 포장일을 할 ‘아무나’는 유연하게 구할 수 있으므로 ‘아무나’를 위해 단단한 안전 장치를 마련할 이유는 없어진다. 노동과정이 분절화되고 노동의 권리가 파편화되는 만큼 재해는 가까워진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노동자의 권리를 무력화하면서 무권리 상태의 노동자를 ‘공급’하는 정책과 함께 간다. 이주노동자가 위험에 더욱 많이 노출되고 안전에 더욱 취약해지는 이유다.

아리셀 참사 희생자 다수가 이주노동자란 사실에 주목한 듯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근로자 산업안전 강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어긋나는 듯하다. 며칠 전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에서 화재 발생 시 행동요령’ 포스터를 배포했다. 네 컷 삽화와 16개국 언어로 번역된 짧은 메시지가 적힌 포스터를 보다가 당황했다. “조기진화를 실시하고 실패 시 즉시 대피!”, “계단으로 낮은 자세로 대피”. 아리셀에서 불길을 피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을 떠올린다면, 최소한 지금 내놓을 포스터는 아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안전에 취약한 이유를 언어가 다른 문제로 한정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작업장에서 저마다 다른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화재 시 대피해야 한다는 정보가 아니다. 정보가 안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노동의 권리다.

어떤 물질도 저절로 위험이 되지 않는다. 특정한 구조와 관계 속에서 위험이 구성된다. 위험을 끊임없이 만들고 흘려보내면서 노동자들더러 피하라는 것이 안전대책일 수 없다. 참사가 리튬에서 시작되지 않았듯 안전도 리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안전은 노동의 권리에서 시작된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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