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밥도둑
미국 대형마트에 진열된 불닭볶음면, 신라면 등 한국산 라면 제품들. 삼양식품 제공

미국 대형마트에 진열된 불닭볶음면, 신라면 등 한국산 라면 제품들. 삼양식품 제공

전통적 내수기업이던 한국 주요 식품기업들의 정체성이 ‘수출기업’으로 바뀌고 있다. 이미 매출 중 해외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반을 넘거나 절반에 가까워진 기업이 여럿이고, 내수시장 점유율 못지않게 미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고심한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가 집계한 통계를 보면 지난해 농수산식품 수출액은 120억2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다. 올해 상반기 수출액은 62억1000만달러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5.2% 증가해 올해도 최고치를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수출 증가를 이끈 것은 라면과 과자류, 음료 등 가공식품이다. 특히 라면 수출액은 2021년 6억7440만달러에서 2022년 7억6540만달러, 지난해 9억5240만달러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고, 올 상반기에만 5억9020만달러를 수출했다.

■‘불닭’ 히트 삼양, 매출 비중 75%가 수출

대표 라면기업들의 매출에서도 해외 비중이 높다. 불닭볶음면이라는 초히트상품을 만들어낸 삼양식품은 2019년을 기점으로 국내 시장보다 수출에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됐다. 삼양식품의 매출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6%에서 2019년 처음으로 50%를 넘었고 지난해는 68%, 올해 1분기에는 75%까지 늘어났다. 스테디셀러인 신라면을 보유한 농심도 지난해 매출 중 37%를 해외에서 올렸다.

라면 외 다른 식품기업들 가운데서는 꼬북칩과 초코파이 등을 앞세운 오리온의 해외 매출 비중이 지난해 기준 64%가량으로 가장 높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비비고’ 브랜드로 만두와 소스류 등을 판매하는 CJ제일제당은 48%, 김치 수출액 절반을 차지하는 ‘종가’ 김치가 있는 대상은 약 30%의 매출이 해외에서 발생한다.

식품기업들이 해외 진출에 주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존 내수시장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저출생과 고령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과자와 라면 등 가공식품의 주요 소비층이던 젊은층 인구가 급감하고 있어 식품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건강식품 등을 출시해 타깃 연령대를 올리거나 신사업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키울 수도 있었겠지만, 때마침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북미·유럽 등 기존에는 주력 시장이 아니었던 지역에서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국 식품기업으로선 시장을 다변화할 기회가 된 셈이다. 기존에 아시안 마켓 위주로 유통되던 한국산 가공식품들이 이 시기에 미국 월마트·코스트코 등 주류 유통채널에 입점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큰 시장에서 안정적 매출을 낼 기반도 생겼다.

[경제밥도둑] “내수시장 넘어라” 수출기업이 된 K-식품기업들

해외 시장 진출은 한국 식품기업들이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라면·과자·김치 등이 일상적으로 사먹는 음식이라 가격을 올리면 반발이 크지만, 외국 소비자들에게는 본국에서 인기가 증명된 수입식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최근 한국산 가공식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북미와 유럽의 물가 수준이 타 지역보다 높다는 점도 작용했다.

올해 1분기 호실적을 거둔 기업은 해외 매출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가장 큰 삼양식품은 올해 1분기 매출 3857억원, 영업이익 801억원을 올리며 식품기업으로서는 기록적인 20.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오리온도 매출 7484억원, 영업이익 1253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16.7%에 달했다. 식품업계의 영업이익률은 통상 5% 안팎으로 높지 않은 편인데, 이들 기업은 수익성이 3~4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해외 소비자 입맛 공략 신제품 잇따라

최근 식품기업들의 주요 공략 지역은 인구 구성에서 젊은층 비율이 높은 곳이다. 농심과 삼양식품은 미국 라틴계 소비자들과 중남미 시장에 주목한다. 미국에서는 최근 라틴·히스패닉 인구가 20%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16세 미만 인구 중에는 25% 이상이 라틴·히스패닉이다. 농심 미국법인은 올해 라틴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맛을 구현한 신제품으로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미국 남부지역을 공략하고 이를 토대로 1억3000만 인구의 멕시코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삼양식품도 지난해 라틴·히스패닉 인구를 겨냥한 하바네로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각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신제품을 개발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오리온은 중국에서는 토마토맛 오감자, 꼬북칩 마라새우맛을 출시했고 베트남에서는 현지 사정에 맞춰 쌀과자와 아침대용 빵 등을 개발했다. 차와 케이크를 함께 먹는 문화가 발달한 러시아에서는 라즈베리, 체리 등 잼을 활용한 초코파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속재료를 넣은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치킨·고수 만두’도 현지 인기 제품이다. 농심은 태국에서 ‘신라면 똠얌’을, 오뚜기는 일본에서 ‘진 베지’와 ‘진 치킨’ 등 한국에 없는 라면 제품을 출시했다. 대상은 미국과 유럽에서 현지 선호 채소인 양배추·케일·당근을 활용한 김치, 비건 김치 등을 내놨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식품을 발굴해 인기를 끌고 있는 기업도 있다. 풀무원은 미국에서 두부 신제품을 꾸준히 출시해 9년 연속 미국 두부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미국 두부 시장 자체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생산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숙제를 갖게 됐다. 불닭볶음면 돌풍으로 수출 물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삼양식품은 2022년 수출제품 전용 밀양 신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 내년 상반기 밀양 2공장을 완공한다. 밀양 2공장이 완공되면 삼양식품 생산능력은 지금보다 약 3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밖에 풀무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생면 생산라인을 증설했고, 롯데웰푸드는 빼빼로의 첫 해외 생산기지를 인도에 구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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