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야권 대선 후보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74세 정치 신인이 있다. 외교관을 은퇴한 지 어언 20년, 손주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나날을 보내던 그는 베네수엘라 현대사에 한 꼭지로 남을지도 모를 사건의 한복판에 섰다. 별로 알려진 적 없던 그의 이름과 얼굴이 “모두를 위한”이란 문구와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졌다. 이달 28일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맞설 야권 대선 후보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다.
곤살레스 우루티아는 외교관, 학자, 작가 등으로 불렸다. 작은 도시 라 빅토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세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외교관으로 평생을 보냈다. 엘살바도르, 벨기에 등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대사를 마지막으로 2002년 은퇴했다. “새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정치적 야망이 없는 온건한 사람” 등으로 주변에선 그를 묘사한다.
“저는 사실 대선 후보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될 생각은 더더욱요.” 지난 4월 야권 대선 후보로 지명된 후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그는 선거를 석 달 앞두고 말 그대로 ‘깜짝 인물’로 등장했다. 마두로 대통령 3선 연임을 저지할 대항마로 꼽혀온 민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마두로 대통령 측근이 포진해있는 선거 관리 당국으로부터 출마를 금지당하면서다.
마두로 대통령은 곤살레스 우루티아를 ‘쉬운 먹잇감’ 정도로 보고 후보로 지명되도록 내버려 뒀을지 모른다고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전했다. 눈에 띈 적도, 카리스마도, 정치적 의제도 없는 사람쯤으로 말이다. 그러나 단결한 야권과 마차도의 지원이 곤살레스 우루티아의 위치를 바꿔놨다. 각종 여론조사가 보여주듯 베네수엘라 시민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본다. 약점으로 비치던 그의 ‘밋밋함’은 ‘정직함’으로, 또는 ‘포용’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곤살레스 우루티아는 장기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시민의 불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인물로 떠올랐다”고 NBC방송은 평가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에 기여하고자 (후보 수락) 결정을 내렸다”며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전환하고 경기를 회복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번 선거는 특히 2013년부터 억압적으로 집권해 온 마두로 정권의 마침표를 찍을 ‘마지막 기회’로 꼽혀 시민들의 열기를 키운다. 마두로 대통령은 2018년 부정 선거 논란 속에 재선에 성공했다. 독재 체제를 이어왔으나 지난해 10월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대가로 2024년 공정한 대선을 치를 것에 합의했다. 마두로 정권이 여전히 법원과 군대, 언론을 통제하고 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정권 교체를 시도할 길이 열린 것이다.
마두로가 집권하는 동안 베네수엘라엔 좌절이 쌓였다. 우고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꿈은 곳곳에서 무너져내렸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직격탄이었다. 2018년엔 무려 6만%를 웃도는 초인플레이션이 나라를 덮쳤다. 화폐가 휴짓조각만 못해지자 생필품 가격이 폭등했다. 약탈이 벌어지고 영양실조로 숨지는 영유아가 늘었다. 2021년 베네수엘라 빈곤층은 94.5%에 달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최근 잡히는 추세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100개월 임금을 꼬박 모아도 가족이 한 달 먹을 음식을 사기 어려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빈곤과 굶주림, 필수 의료 약품의 부족을 참지 못해 떠난 이민자 수는 8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달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곤살레스 우루티아는 지난달 한 유세에서 “국가적 학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재건 과정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사람의 나라, 모든 사람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베네수엘라에 부는 새바람’ ‘처음으로 진정한 변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선거’…. 여러 언론이 대선을 코앞에 둔 베네수엘라 분위기를 이처럼 전하면서도 “결과를 낙관할 순 없다”고 입을 모은다. 마두로 정부가 끝까지 선거 운동을 방해할 가능성이 커서다. 비정부기구 포로 패널에 따르면 선거 운동 시작 후 야권과 연관된 102명이 정치적 이유 등으로 구금됐다.
곤살레스 우루티아가 악조건을 뚫고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마두로 대통령이 민주적 정권 이양을 거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남아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유세에서 “내가 패배할 경우 베네수엘라가 피바다가 될 위험이 있다”며 “(이번 투표는) 평화로운 베네수엘라를 택할지, 동족잔상의 내전으로 얼룩진 베네수엘라 택할지의 문제”라고 말했다고 2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