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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격변

입력 2024.07.23 20:40

수정 2024.07.2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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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늘 불안하다 보니, 불안한 것이 오히려 덜 불안한, 아이러니한 상태예요. 불안하지 않은 것이 어색해요.”

얼마 전 ‘일터에서의 불안’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던 한 출판사 편집자의 고백이 내내 떠올랐다. 젊은 세대의 만성적인 수행 불안의 괴로움이 생생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진료실과 직장 건강강의에서 만나는 많은 청년들이 학업과 업무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한다. 끊임없이 줄 세우고 비교하는 환경에서 경쟁하며 자라온 그들의 마음에는 성취에 대한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이 자리 잡고 있다. 주어진 과제는 높은 완성도로 제 시간에 해내야 하고, 그 와중에 상사에게 잘 보이고 팀원들과 원만히 지내며 평판도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하나의 과제를 어찌어찌 해내도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나의 작은 허점도 트집 잡을 것이고,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를 버릴 것이며, 경쟁은 영원히 끝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압박감이 지속되다 보니 불안한 상태가 익숙하고 불안하지 않으면 도리어 불안해서 편히 쉬지 못하고 일을 자청하기도 한다.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기 쉬워지는 것이다.

불안은 미래를 준비하며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중요한 동기 중 하나이다. 불안은 책상 앞에 앉아 있도록, 도면을 그리도록, 근육을 단련하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압박한다. 적당한 수준의 각성이 성과를 향상시킨다는 것을 제안한 심리학자의 이름을 딴 예르키스-도슨 곡선(Yerks-Dodson curve)은 이러한 ‘불안의 최적 지점’ ‘적정한 불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내가 진료실에서 이 곡선을 설명하며 주목하는 지점은 각성이 적절한 선을 넘자 성과가 떨어지는 역U자 포물선의 오른쪽 부분이다. 불안에 의한 피로와 고통이 심해지면 이로 인한 활력과 성과는 줄어든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던 김광석님의 노래 가사처럼, 너무 많은 불안은 성과를 심각하게 방해한다.

어떤 이들은 시험, 발표, 중요 프로젝트 직전이나 도중에 불안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상태를 경험한다. ‘머릿속이 완전히 하얘지’거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거나 ‘가슴이 너무 뛰어 그 자리를 떠나야’ 할 정도로 생리적 각성이 과해지면서 이에 압도되는데, 이때는 수행능력이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낭떠러지처럼 추락한다. 하디라는 학자는 이를 “격변 이론(catastrophe theory)”으로 설명한다.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예측하고, 상황을 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지적 불안이 높은 상태에서 신체적 불안도 높아지는 경우, 수행이 뚝 떨어지는 격변 상태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청년들의 상황을 떠올려보자.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된 악몽 같은 시뮬레이션들, “난 안 될 거야, 이미 망한 것 같아, 너무 늦었어”의 스리콤보 자책이 그들을 쉽게 격변 상태로 이끌 것이다. 격변 상태를 경험해본 이들은 그 괴로움을 잊지 못하여, 도전 상황을 피하게 되거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과도한 준비를 거듭하는 방어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전략이 그들을 더 비관적이고 피로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격변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팁은 그 순간 불안한 상상과 자책을 되뇌는 생각을 멈추고 구체적 신체 감각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손에 잡은 펜의 질감, 들이켠 생수의 차가움에 잠시 머물며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상태를 ‘재앙’이 아니라 ‘격변’, 그저 급격한 변화가 있는 상태로 인지하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세상이 문제이지 불안을 느끼는 나는 문제도 재앙도 아니라는 것,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청년들로 하여금 과도한 불안과 격변을 느끼게 하는 이 사회의 잘못된 강박들은 윗세대가 경각심을 갖고 바꿔가야 한다.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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