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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을 권리

의료, 요양, 돌봄, 상조.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 시대 ‘죽음’은 점점 더 거대한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다. 살기도 힘들지만 죽기도 쉽지 않다. 잘 죽기는 더욱 어렵다. 무병장수 끝에 고통 없는 죽음, 9988234를 꿈꾸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인가. 현대의학의 눈에 노화란 없다. 살아 있는 한 치료하고 극복되어야 할 다양한 이름의 질병만이 있을 뿐. 우리의 노년에는 병명과 먹어야 할 약이 하나씩 더해진다. 누구에게나 임종의 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죽음을 의료의 패배로 인식하는 고약하고 오만한 의료시스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를 살리려 든다. 의사에게 환자를 살려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면 환자에게도 잘 죽을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임종 단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렵게 얻어낸 ‘잘 죽을 권리’의 시작이다. 내가 주 1회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대형병원 부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실 모습을 통해 다음 3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자기결정권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하는 것이다. 60대 남성이 아내·아들과 함께 상담실을 찾아왔다. 당사자는 병색이 완연하고 가족들은 뭔가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거예요?”

말을 들어보니 담당 의사의 권유로 왔다고 했다. 그래서 설명을 들어보고 결정하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가족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하면 병세가 더 악화될 경우 응급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으니 의사 선생님과 다시 상의하겠다며 돌아갔다. 의사가 상담을 권유한 것은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정작 당사자는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는 가족 아닌 환자 당사자가 결정해야 한다.

둘째,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60대 여성 암환자가 보호자(자녀) 없이 진료를 보러 나온 김에 몰래 등록하러 왔다고 했다. 자식들이 알면 귀찮게 할 것 같다고 했다. 80대 부부도 자식들 모르게 하고 싶고 등록 내용을 아무도 못 보게 하고 싶다고 했다. 연명치료에 관한 생각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평소 자주 분명히 말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한 것에 대해서도 알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가족의 반대로 연명치료를 받게 되는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셋째, 마음을 가볍게 가져야 한다. 70대 초반 여성이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상담실에 들어왔다. 웃는 얼굴로 맞이하며 가벼운 인사와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등록 전 확인 사항이 몇 가지 있어 말문 트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분은 어느새 경계심을 풀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고 본인도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며 걱정이 많다고 하셨다. 초기에 진단을 받으셨으니, 이제부터 약 잘 챙겨 드시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환히 웃으며 방을 나가셨다. 부디 삶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지셨길 바랐다.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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