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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간첩법의 역설

입력 2024.07.30 15:06

수정 2024.07.3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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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의 베이징 리포트] 반간첩법의 역설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학학습 앱 듀오링고의 중국어 이름은 다린국(多隣國)이다. 의미도 발음도 맞아떨어지는 번역어를 보면 중국의 인문역량에 감탄이 나온다. 그런데 다린국에서는 이웃을 만날 수 없다. 중국 듀오링고는 망이 분리돼 있어 해외 학습자들이 뜨지 않는다. 듀오링고 친구도 못 맺는다.

듀오링고 앱에는 채팅 기능이 없어 친구를 맺어도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상대방 학습 진도를 확인하고, ‘좋아요’를 눌러주며 격려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프로필 사진을 바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의사 표현 수단이 많은 다른 나라 학습자들은 듀오링고 프로필 사진을 정치적 메시지의 전파 수단으로 떠올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씁쓸하다.

이런 씁쓸함은 이달 들어 시행 1년을 맞이한 개정 반간첩법을 생각하면 더욱 강하게 느낀다. 아직 한국인이 반간첩법으로 체포됐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기업이나 연구기관 등이 코로나19 봉쇄 해제 후 중국 재진출을 계획했다가 반간첩법 때문에 접었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에 경영 전략을 자문하는 A씨도 그러한 사람이다. 그는 청소년기를 중국에서 보냈다. 중국어가 유창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와 시스템을 잘 이해한다. 무엇보다 중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다. 나에게 “중국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다니 반갑다”고 할 정도였다. 그의 직장은 베이징 사무소 개소를 검토하다 위법 시비에 말릴 위험이 있고 실익이 적다고 판단해 계획을 접었다.

중국 당국은 “법을 잘 지킨다면 무엇이 두렵겠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쪽은 외국인이 아니라 중국인들이다. 반간첩법 제정 이후 학교, 정부 기관, 공공기관 등이 외국인과 만날 경우 사전 보고를 하게 하는 규정을 마련했고, 국가안전부는 위챗에 연일 처벌 사례를 홍보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업무상 외국인 만나는 것 자체를 기피하고, 만나도 판에 박은 말만 전한다고 한다.

지금 일선에 나오기 시작한 한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2000년대 한·중교류가 활발했던 시절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유학 경험자도 많다. 한창 활약할 시기에 반간첩법을 만나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가 없게 됐다. 대학가에 따르면 이를 본 요즘 학생들은 중국 관련 전공을 피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지적 호기심과 의욕이 강한 학생일수록 자신의 지식이 불완전한 상태에 머무는 것이 싫어 다른 전공을 택한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한·중관계의 장래는 어둡다.

중국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줄어드니까 그래도 반간첩법은 중국에 이익이 아닐까. “중국이 반간첩법으로 유독 비판받지만, 미국이 먼저 시작한 ‘차이나 이니셔티브’에 맞대응한 성격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안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보호주의 경향을 띠면서 장벽을 만들고 있다. 중국을 악마화하지 말고 반간첩법 역시 그런 맥락 속에서 비판해야 한다.”

이 말을 전해준 중국학자 B씨는 서구의 비판적 중국학자들과 교류가 많아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볼까 봐 중국에 입국할 생각을 못 하고 있다. 그는 정작 반간첩법에 관해 묻자 균형 잡힌 대답을 했다. 반간첩법은 이런 목소리를 축소할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C씨는 안식년을 중국에서 보내고 싶었으나 계획을 접었다고 했다. 그는 “가깝다는 점도 장점이고 미·중관계에 대한 중국의 시각도 궁금했지만 최근 분위기상 중국 학자들 만나는 것이 의미가 없다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미국 일변도 대외인식을 조금이나마 교정할 기회가 날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지리적으로 멀든 가깝든 호기심이 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싶은 상대는 이웃이다. 듀오링고 번역에 감탄한 이유이다. 수많은 이웃들이 다시 중국에 두려움 없이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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