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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화제다. 센강에 배를 띄워 각국 선수단을 입장시킨 것을 비롯해, 미도(美都) 파리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파리에 거주한 적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파리 예찬이 한창이다. 나는 하루 스쳐 지나간 적밖에 없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는 도시를 가진 프랑스가 부럽다. 일본 교토(京都)에 가서도 부러워 했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세계문화유산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헤이안(平安) 시대 이래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 지명 등이 사람들을 시간에 젖게 만든다. ‘지구상에 교토가 남아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한 적이 많다.

요통이 지병인 나는 많이 걸으려 노력한다. 다행히 다른 운동보다 걷기는 덜 싫어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걷는다. 마포에 사는데 광화문에서 약속이 있으면 걸어갈 때도 있다. 5호선 마포역에서 광화문역까지는 5㎞로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그냥 걸으면 지루하다. 구한말 역사를 읽다보면 마포가 자주 등장한다. 그 시대 역사가 그랬으니, 별로 좋지 않은 맥락에서다. 갑신정변 주역들이 서울도성을 빠져나와 마포로 도주하기도 하고, 청이나 일본 세력이 사대문(四大門) 안으로 들어올 때도 어김없이 마포를 통과한다. 갑신정변 후 조선 정부와 담판하러 온 일본 정계 거물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도 여기를 지났고, 김옥균은 내 집 근처 양화진(楊花津)에서 부관참시를 당했다. 나는 마포역-공덕역-충정로역-서대문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광화문으로 걷는데, 당시에는 이 길이 아니었겠지만 그런 일들을 떠올리며 걷는다.

며칠 전엔 동네 산책을 하다 생각나 구수동(舊水洞) 사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시인 김수영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곳이다. 갑자기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산이 없어 한 식당의 낡은 차양 밑에서 비를 피했다. 강한 빗발 사이로 그가 살았다는 곳과 사고당한 곳을 응시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텐데 몇 걸음을 더 옮기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 거다. 성북구에 수연산방(壽硯山房)이란 아름다운 한옥을 남긴 소설가 이태준(李泰俊)도 마포구 신수동(新水洞)에 산 적이 있음을 수연산방 안내문을 보고 알았다.

더위를 무릅쓰고 꾸역꾸역 다닌 보람이 있었는지 얼마 전 정말 맘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석파정(石坡亭). 지나치다 표지를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서울시내 한복판에 설마, 그저 그런 곳이려니 했다. 석파란(石坡蘭)으로 널리 알려져 있듯, 석파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호다. 안내문에 따르면 철종 때 영의정이던 안동김씨의 세도가 김흥근의 별장이었던 곳을 이하응이 넘겨받았다고 한다. 원래보다는 줄어들었다고 하는데도 제법 규모가 있었다. 국왕의 생부가 거하던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건물보다 좋은 것은 풍광이었다. 인왕산 자락이 북악으로 흐르다 만들어낸 계곡이 선경(仙境)이라 할 만했다. 인왕산 높은 곳의 바위들이야 많은 화가들을 설레게 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계곡 뒤쪽에 앉아있는 바위들도 참 좋았다.

오래전 일본인 지도교수가 서울을 찾았을 때, 서울 같은 거대 도시에 산이 많은 게 특이하다며 한번 데려다달라고 한 적이 있다. 국민대 재직 시절이니 뒷산이 곧 국립공원(북한산)이었다. 30분도 가지 않아 깊은 계곡이 나오고 콸콸거리는 계곡물에 발 담근 채 뭘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 일본인 교수는 신기해했다.

많은 전란으로, 또 난개발로 서울에는 남아있는 문화유산이 별로 없다. 그나마 자랑할 만하던 숭례문도 야속하게 사라져버렸다. 그 점에서 파리나 교토와 나란히 설 수는 없다. 그러나 600년이나 넘게 한 나라의 수도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이 도시 곳곳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걸 읽으며 되새기며 상상하며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것도 작지 않은 즐거움이다. 날 좀 서늘해지면 더 걸어야겠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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